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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1을 비바람 보며 읽어낸 며칠 뒤 하늘이 맑다. 다시 동네 찻집 창가 자리를 잡고 앉아 다산2을 마저 읽어냈다. 장편이라 두 권으로 나눈 것일뿐 다른 의미는 없는 듯.
다산2는 황사영백서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전라도 강진으로 기약없는 유배를 다시 떠나게 된 배경이 된 사건이다. 학교 다닐 때 천주교 박해. 황사영 백서. 이렇게 키워드만 줄곧 외웠던 기억이 난다.
다산은 한때 천주교(서학)에 귀의했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다만 당시 천주교인은 극형을 당하던 때라 적발되면 폐족이 될 수도 있었다. 때문에 다산은 그의 형 정약종과 달리 자신의 신앙을 유보하는 상소를 쓴다.
죽임은 겨우 면했지만 정약용과 그의 형 정약전은 유배형을 받는다. 자산어보로 이름을 남긴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끝내 유명을 달리한다.
강진에 자리잡은 다산은 유학자로서 저술과 제자 훈육은 물론 불가의 인물과도 교유한다. 혜장 스님과 초의 스님이 그들이다. 근원을 탐구하는 그들은 각자가 신봉하는 유학과 불교(경)을 고집하지 않는다.
한승원 작가의 필치로 그려낸 그이들의 선문답 같은 차담을 엿듣고 보다 보면 2세기 전 강진의 어느 산자락에 가 있는 듯한 아련함에 잠기게 된다.
다산과 혜장, 초의 선사가 밤을 새워가며 논쟁-감정으로 싸우는 것이 아닌-을 하는 광경을 그려보면 오늘날 행태에 자연스럽게 비교가 된다. 다른 것과 틀린 것을 다투는 수준을 뛰어넘는...
취한 듯 책장을 넘기다가 보면 아쉬운 점도 있었다. 바로 모르는 단어가 자주 나오는데... 국어사전이랑 포털 어학사전을 뒤져도 안나오는 낱말이 꽤 있었다. 편집자 주석이나 말미에 부록으로 단어풀이를 해 주는 배려가 아쉽긴 했다.
더해 한자 병기가 필요한 단어들...특히 조선시대 관직명이나 당시에만 사용했을 용어는 한글로만 표기되었을 때 그 뜻을 밝히 알기 어려웠다는 평범한 독자의 아쉬움이 있다.
그럼에도 다산이 걸었던 인생 역정을 가야금 가락처럼 묵직하게 같이 걸을 수 있는 책 읽기였음에, 여운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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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은 생각했다. 불교인들의 '저절로(본연지성)'란 것이 사실은 저 거래와 대립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유학 선비들이 천주교를 신앙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천명'에 따른 사업으로써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는다면, 스님들은 저 자기와의 거래와 대립을 참회라는 과정을 통해 마음을 청정하게 다잡는다. (155쪽)
그녀가 거문고를 밀어놓고 다시 술을 따랐다. 둘이 다 취했다. 그녀의 몸과 마음은 일렁거리는 밤바다가 되어갔고, 그는 그 밤바다 여기저기를 밀행하고 있었다.(182쪽)
울고 또 울고 하다가 깨어보니 꿈이었다. 꿈이 너무 허망하여, 그는 새삼스럽게 천장을 쳐다보면서 꿈에 본 형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울었다.(2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