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스마트폰이나 전자북 전용 리더기로 책을 읽는 빈도가 늘었다. 전자북은 휴대가 편하다. 수백권을 담아 다닐 수도 있다. 그런데 전자북을 책으로 보지 않는 이들도 있다. 종이책은 생각의 훈련이 이뤄지는 3차원의-종이 한 장의 상하좌우와 두께- 좌표를 가진다고 설명한다. 이 좌표를 갖고 인간의 뇌에서 장소 세포들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공간적 위치와 사물의 배치를 감지한다. 전자북과 다른 점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들리는 사삭하는 소리는 뇌리를 자극한다. 아무리 전자북에 효과음을 넣어도 손가락과 눈과 귀가 동시에 반응하는 경험을 대신하긴 어려울 터.
책읽기의 즐거움을 어려서부터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시험 문제를 잘 풀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 선현의 지혜를 배우고 익히는 법열-깨달아 아는-의 기쁨을 경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은 누구나 고전 읽기를 권한다. 유행을 타는 동시대의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고전이라 함은 수천년 동안 버림 받지 않고 계속하여 독자들의 선택을 받는 스테디셀러라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시대를 거스르는 보편적인 또는 절대적인 진리에 근접한 통찰의 집합체라 할 수 있겠다.
장맛비가 추적거리는 주말 오후에 찬물로 몸을 씻고 나서 뜨거운 커피 한 잔 홀짝이며 각을 잡고 읽은 책. '10대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하버드 대학 세계 고전은 그저 그런 류의 요약서로 보였다. 제목이 너무 뻔해 보여서 그랬다. 수능 세대의 문해력과 문장력을 높여주는데 도움을 주는 건강(?) 도서라 할 수 있겠다. 막상 한 권씩 읽어나갈 때마다 저자의 수고로움이 느껴진다. 방대하고 심오한 고전 한권 한권을 먼저 읽고, 씹어서 먹여주는 어미새처럼. 단순한 요약에 그치지 않고 저자의 단상을 곳곳에 더해 주어 고전 읽기의 길라잡이를 충분히 해준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을 때 수백년 전에 씌여진 치국론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에 놀랐다. 왕(오늘날의 대통령이나 총리)은 선인과 악인의 경계에 선 사람이어야 한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직언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과연 오늘날 정치와 경제, 문화, 체육 각 방면의 지도자를 꿈꾸는 사람들은 고전을 통해 전해지는 선현들의 경종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있을까? 그들을 탓하기 전에 그런 자들을 분별하지 못하는 나를 비롯한 대중들-헌법상 주권자들-의 게으름을 먼저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 먼저 인생을 살아낸 선각자들의 저작을 통해서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지혜를 배우기 위함.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면 정인호 작가의 안내를 따라 고전 읽기 순례를 하며 무더운 여름을 지나가는 것도 유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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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을 사랑하고 상냥하고 인도적이며 겸손하며 정의를 사랑하고 잔인함을 혐오했던 이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아야 했던 이유는 뭘까? 바로 권력을 지탱하는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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