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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게님의 서재
  • 지식의 최전선
  • 앤서니 그레일링
  • 22,500원 (10%1,250)
  • 2024-05-30
  • : 877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다. 반지성이 상식과 지성을 이기는 상황이 과거에도 있었다는 반증일 것이다. 스마트폰이 일상을 바꾼 현대 사회에서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는 서적보다 유*브, 인스*그램, 틱* 같은 동영상 매체의 영향력이 그 어느때보다 커졌다. 사람들은 긴 글보다는 짧은 글을 좋아한다고 한다. 글을 읽을 줄은 알아서 명목상 문맹은 아니지만, 맥락을 이해하는 문해력에는 문제가 많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중고생 때 교과서로 배웠던 여러 가지 정답들-당시 시험 문제를 기준으로-이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는 사례가 많음을 알게 된다. 역사가 그렇고 과학의 영역 또한 그렇다. 고고학자들이 새롭게 발견한 과거의 유적과 유물은 기존의 교과서를 새로 기술하게 만들었다. 허블 우주망원경은 수십년 간 천문학의 지평을 넓혀 왔다. 거기에 더해 최근에 우주에 띄운 제임스 망원경은 허블이 미치지 못한 영역을 더 넓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우주, 인간, 생명 기원에 대한 인류의 호기심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새로운 지식을 더해 왔다. 그 과정에서 종교와 과학은 끊임 없이 대화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극렬한 대립을 하기도 했다. 종교는 아직도 과학의 영역에서 규명해 내지 못한-아마도 영원히 도달하지 못할 수도- 우주와 인간, 생명의 기원에 대한 설명을 한다. 종교의 영역은 그 가설을 실험으로 교차 또는 반복하여 입증할 없다. 그렇다고 해서 과학이 인간의 호기심에 대한 답을 선명하게 모두 제시한 것도 아니다. 다만 한 걸음씩 꾸준히 진보해 나가고 있는 과정이다.


이번에 읽은 책 '지식의 최전선'은 추천사와 달리 쉽게 읽혀지지 않았다. 과학과 종교, 인간에 대한 이해-두뇌와 마음-와 지식이 충분히 축적되지 않았기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저자 앤서닌 그레일링은 철학자이자 작가, 교수로 철학, 과학, 역사, 심리학을 통섭하는 강연과 저술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고 한다. 꾸역꾸역 제1부 과학을 읽어 내고, 제2부 역사를 거쳐 제3부 두뇌와 마음까지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그간 인류가 축적한 지식이 최신으로 업데이트됨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신념을 절대시하는 것은 자유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시험 문제의 정답으로 삼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는 아니다. 저자는 수천년이 넘는 인류의 지식 탐구 활동을 '지식을 통해 믿음에서 무지로 넘어왔다(440쪽)'고 말한다. 믿음은 서구의 주류 종교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하는 믿음에서, 인류는 자발적으로(?) 무지의 길을 선택했다?. 근대에 접어 들면서 종교의 굴레를  벗어나 과학과 철학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서구 사회가 그렇다. 


그렇다고 과학과 종교가 서로 대립만 하는 영역일까?  그렇지 않다. 인간은 지식의 최전선에 다가갈수록 여전한 미지의 영역-무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절대자를 찾게 된다. 우주와 인간의 기원은 아직도 미지의 영역이자 이미 답이 주어졌다고 말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지식의 최전선에 서서 여전히 혐오와 반지성으로 싸우는 군상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진지하게 일독 아니 이독, 삼독을 할 책이라 생각한다. 


*** ***​

인류는 확실한 믿음에서 불확실한 지식을 향해 진전해 왔다. 지식을 통해 믿음에서 무지로 넘어 왔다. 지금 우리는 '지식으로 가득 찬 새로운 무지'라는 놀랍고도 역설적인 상태에 와 있다. 


지식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배우고 통달했지만, 산을 오르는 등반가들처럼 더 높이 올라갈수록 우리의 무지도 더 넓게 펼쳐지는 광경을 목도하고 있다. 


지식의 최전선 자체가 지평선 저 너머에 놓여 있어서 차마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4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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