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만 지금은 추억이 된 이야기 하나.
십여년전 짝사랑하던 과 선배가 군대에 가 있을때 감성이 극도로 풍부해진 밤에
'좋아했다, 그런데 너무 힘들었다. 왜 나를 좋아하는것처럼 대했냐. 슬프다. 이제는 잊으련다'
이런 내용을 적어 보낸 적이 있었다.
보내고 나니 왜 그리 부끄럽던지.. 빠른우편으로 '뒤에 도착하는 편지는 읽지도 말고 찢어버려라'는 내용으로 또다른 편지를 보냈다. 그에 대한 답장으로 그 선배로부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편지가 왔다.
편지는 내 바램과 달리 보냈던 순서대로 도착했고, 그래서 읽었다고.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미안했다라고...
떨리는 손으로 읽어내려간 그 편지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시절의 달팽이 편지..정말 달팽이 편지였다... 내 마음도 모르고 느리게 간 빠른우편으로 보낸 편지...
그 시절. 그렇게 편지를 쓰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손글씨보다 컴퓨터로 작성하는 글이 더 수월하게 나오고
사랑은 연필로 쓰라던 노래는 정말 옛노래가 되어버렸고 그저 컴퓨터로 작성하다
지우개도 필요없이 한번에 delete할 수 있는 감성이 생겨버린 요즘
'달팽이 편지'라는 느리게 걷기 같은 느낌의 책은 어떤 내용일지...
최근 읽었던 '그냥 눈물이 나'와 비슷한 감성의 책인듯한 표지...
몇년전부터 생긴 나의 버릇.
책 저자의 나이를 가늠해보며 그 작가의 소리로 글을 읽고 싶은 마음과 함께
소설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의 엄마이며 일하는 여성이 말하는 삶의 이야기가 듣고 싶은 것이다.
힘든 마음이 공지영의 '나는 너를 응원한다'라는 무조건적인 격려가 필요했던 때처럼
지금의 나 역시 무언가 나에게 좌표를 그려줄 사람들의 이야기가 필요한 때인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달팽이 편지'는 느리지만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날카로워진 나의 신경을, 지쳐버린 내 마음을, 정말 아팠던 감기로 인해 떨어진 체력을
위로해주고 보듬어 주는 느낌이었다.
옆에 두고 무작정 아무페이지나 펴도 만날 수 있는 따뜻한 감성.
그런 책이 달팽이 편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