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셔닐 손수건이라니! 발음만으로도 품위가 느껴지는 단어 아닌가?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은 마치 볕뉘가 반짝이는 기분 좋은 아침처럼 따스한 표지로 눈길을 끈다. 셔닐 손수건이 뭐지? 그 부드러울 것만 같은 감촉이 궁금해진다.
대학시절, 출석부에 나란히 적힌 이름 (스와, 세노, 세이케) 덕분에 '쓰리걸스'로 불리며 30년 넘는 우정을 이어온 세 친구가 있다.
글 쓰는 직업을 가진 차분한 성격의 스와 다미코는, 여든이지만 건강하고 귀여운 어머니 가오루와 함께 살아간다.
가족에 헌신적인 세노 사키는 마당에 좋아하는 정원을 가꾸며 살림도,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는 성실파다.
오랜 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세이케 리에는 살 집을 구하기 전에 다미코에게 신세지며 제멋대로인 것 같지만 미워할 수 없는 활기가 있다.
리에가 귀국 한 뒤 변함없을 것만 같던 그녀들의 일상은 가족, 지인들과 함께 조금씩 영향을 받으면서 여러 에피소드가 생겨난다.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나는 다미코가 되어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리에와 그녀의 많은 짐에 자신의 집과 방을 내어주고 거실에서 생활하기도 하고, 사키가 되어 '자식보다 품이 더 들지만 매일 밤 드라마를 같이 보려고 하는 남편'을 떠올리며 피식 웃기도 한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제멋대로인 리에도 그녀만의 실행력으로 주변을 챙기는 모습에, 쓰리걸스로 오래도록 우정을 쌓을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렇게 봄과 함께 온 손님 리에는 반년정도 머무르다 가을이 되어 살 집을 구하고 떠난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속담처럼, 활기차고 북적거리던 손님인 리에가 떠나자 다미코는 허전함을 느낀다.
특히 이 책의 또다른 매력은 등장인물들의 폭넓은 세대와 성별이다.
10대 아이리, 20대 마도카, 50대 다미코와 친구들, 80대 가오루로 이어지는 여성세대.
그리고 그들의 남편, 아들, 친구 등 다양한 연령대의 남자세대.
이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느끼는 생각과 감정의 묘사는 담백하면서도 너무나 적절하다. 독자로서 나 역시 그들과 공감대를 가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특히 사키처럼 가족과 함께 여유롭고 활기찬 중년을 보내고, 가오루처럼 사랑받고 건강한 할머니로 나이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읽는 내내 마음이 따사로웠다.
'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은 우리 삶 속에서 느껴지는 소박한 행복과 잔잔한 우정을 담은 봄날 같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