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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pre님의 서재
  • 거짓말 1 (양장)
  • 노희경
  • 18,000원 (10%1,000)
  • 2010-02-22
  • : 584

노희경의 <거짓말>.
TV드라마인데 '어찌 이런 대사들이?' 싶을 정도로
詩같은 아름다운 은유들이 넘치는 작품이다.
그 <거짓말>이, 대본집이라는 이름의 책으로 나왔다.
영상이 아닌 글로 읽는 <거짓말>.

<거짓말>의 첫 방영이 1998년이었으니,
세상에 나온지 벌써 12년이 된다.
그동안 이 작품은 국내 최초의 드라마동호인 '거짓말 마니아'들에 의해 끊임없이 회자되었고,
명장면과 명대사들은  각종 미디어-특히 인터넷-에서 수없이 인용되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전설적인 '노희경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나도 뒤늦게(방영 5년 후에야 처음봤다) <거짓말>마니아 그룹에 동참했고,
숱한 날을 <거짓말>을 보며 눈물 흘렸으니,
이제 유명한 장면이나 대사는 거의 외울만큼 알고 있기도 하다.

또한 선구적인 동호인들의 노력으로 제작된
'영상대본'은 드라마의 장면은 물론 대사와 지문들까지 텍스트로
반복 감상할 수 있게 해 주었기에,
웹공간에서 재탄생한 <거짓말>을 무한 반복해 보며
감동을 더하고, 추억을 쌓아왔다.

어찌보면 그런 이유로, <거짓말>대본집의 출간 소식은
한편으로 반가우면서도 또 한편으론
책으로서 '소장용'의 의미를 가질 것이란 것 외에
그 이상의 기대는 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양장본'으로 출간된다니.. 매번 책 한권을 사도
들었다놨다를 반복하는, 가벼운 지갑의 소유자인 나로서는
단가가 올라가겠구나.. 는 속투정도 했었음을 고백한다.

어쨌든, 그랬거나 말았거나..
12년을 이어온 <거짓말 동호회>의 일원으로서
기꺼이 이 대본집을 질렀다.

출간기념 기자간담회가 성황리에 끝나고
이어 나온 '레알' 인터뷰 기사가 인터넷에 떠오르자..
환영의 광클릭질과 함께 당시의 이야기들을 알아가는 즐거움은 더욱 커졌고..
드디어, 배달되어온 <거짓말>대본집1,2를 받아들었다.
예쁜 장정의 표지와 추천의 말.. 비로소, <거짓말>을 책으로 만났다.

먼저, 작가의 말을 본다.
<거짓말>을 쓸 수 밖에 없었던, 쓰면서 진실로 아프게 사랑했던 이야기를 읽는다.
시청자로서 가슴저리게 느꼈던 그 감정들은 필연이었구나,
작가가 저렇듯 치열히 앓듯 써낸 작품이기에 그리 절절했구나, 새삼 느낀다.

책장을 넘기니 시놉시스가 소개되어 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시놉시스란, 아주 간략한 '줄거리'쯤으로
드라마 본편을 시청하는 입장에선 굳이 보든 안보든 별 상관없는 글일텐데,
<거짓말>의 시놉시스를 읽는 것은 기대밖으로 흥미진진했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인물들의 캐릭터와, 그들이 살아온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배우들이 시놉시스를 받아들고 인물을 떠올리고 분석하고 체화하기까지
그 지난한 과정들이 조금이나마 느껴지는듯 했고,
상상속의 인물이 어떻게 실존의 배우와 가장 잘 어울리는 조합으로 연결되었을까 궁금해지기도 하고,
배우들이 자연인으로서의 자신을 버리고 그 인물에 몰입하기 위해 겪었을 과정들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요즘의 드라마 홈페이지에 기본적으로 소개되어있는 시놉시스들과 비교하면
매우 길고 구체적인 시놉시스여서, 작가의 감정까지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 하다.

이제 본문을 넘겨본다.

이미 텍스트로 접했던 <거짓말>의 대본이지만, 책으로 접하게 되니 무척 새로운 느낌이다.
각 씬의 제목과 인물명을 본문대사와 다른 색깔로 인쇄해 그런가 싶었는데,
웹상으로 접하던 텍스트와 확연히 다른 점이 눈에 띈다.

웹에서는 지면의 한계가 없으므로 대사의 호흡, 지문의 호흡에 따라
줄바꾸기와 단락바꾸기가 많았는데,
책에서는 한 인물의 대사를 모두 이어서 한 단락 안에 처리하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보는 화면의 여백은
어떤 작품을 감상할때 의식적으로 쉬어가는 포인트를 만들어 주게 되는데,
컴퓨터화면으로 읽었을 때는

글이

널찍하게

詩처럼

배치되어 있었다면,

 

책은
한 인물의 대사를 줄바꾸기 하지 않고 쪽넓이 분량만큼 꽉 채워 배치해, 산문의 느낌이 나게 되었다. 자연스레 전체 쪽수는 줄어들고, 글은 빽빽해져 숨 쉴 틈이 많이 줄어든 느낌이다.
낯선 이야기를 보는 느낌이랄까?
이렇게, 줄바꾸기와 단락나누기는 글의 느낌을 많이 달라지게 한다.
한정된 지면에 배치하자니 여러줄을 이어붙여야 했다는 점, 십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익숙해지긴 쉽지가 않다.ㅠ

그러다보니 내가 알고 있던 <거짓말>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보고 있는 생소함이 느껴진다.
대사들의 현실의(TV속의) 호흡으로 읽혀지지 않고, 그냥 '책'이 되어버린 다른 내용같다.
잠깐동안은 그렇게 당황하며 갈피를 못잡다가,
다시 한장 두장 넘겨보기 시작했다. 책장을 더 천.천.히. 넘기며 읽어야 겠구나.. 생각하면서.

웹상으로 볼때는 드라마에 동화된 나의 감정선에 따라
물 흐르듯 읽어내렸던 '감정지문'들..
이것이 배우들을 당혹스럽게 했다고 하니,
다시 한번 꼼꼼히 보게 된다.
그렇게 다시보니 정말 지문이 많기는 많다.
드라마로 표현되기까지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쓴 섬세하고 단호한 심정들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본문에는 드라마완성본과 조금 차이가 나는 부분도 있지만, 그건 내용감상에 큰 불편을 주지는 않는다. 
<거짓말>의 주요한 장면들과 명대사들이 고스란히 살아있으니, 
글로 처음 접하는 사람이건, 드라마를 먼저 본 사람이건,   
<거짓말>은 그것으로 많은 사랑의 의미를,
인생의 의미를 던져주는 행복한 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장정과 작가의 친필로 인쇄된 표지 글이며, 튼튼한 양장도 모두 다
사랑하고 싶어지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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