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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전원희 켜졌습니다
  • 마태복음 해석
  • 김학철
  • 12,600원 (10%700)
  • 2014-04-30
  • : 187

마태복음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 나온 것 같다. 저자의 의도는 서론에서 충분히 살필 수 있다. 저자는 이미 서론에서 마태 공동체의 상황과 마태복음과의 관계를 밝힌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마태복음을 “사회 정치적 현실”과 맞선 그들의 신학적 상징 세계라고 표현을 한다. 저자가 표현하듯 “예수”는 그들이 피할 수 없고, 절망에 빠진 마태공동체에게 희망을 주는 인물이었다. 또한 믿음을 갖게 해주었으며, 현실을 돌파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었다. “예수”에 대한 신앙을 가진 그들이 로마의 지배 아래에서 어떻게 맞서서 살았는가를 밝히는 것이 이 책의 근본적인 핵심이다. 왠지 마태공동체의 상황이 공감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 시대에도 식민지는 아니지만 눈만 뜨면 한 숨이 가득하고, 불합리함과, 벗어날 수 없는 “현실” 때문일까?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과연 저자가 바라보는 마태복음의 해석 접근 방법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서론을 넘어 본론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저자의 글들을 모아 편찬해 낸 책의 장점이 있다고 한다면 서론-본론-결론의 형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보기 쉽다는 것이다. 내용이 쉽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이미 1장에서부터 신약의 외경(유딧서, 토비트서)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쉽게 접하기 어려운 글들이기에 독자들에게 생소하거나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마태 공동체의 상황 주변에 있었던 글들이 마태복음을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사용을 하였다. 서론-본론-결론의 형식을 가진 책들은 서론과 본론에서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고 해도 결론에서 한 번 더 요약을 해주기 때문에 장점이라고 언급한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새로운 해석의 시도를 한 것처럼 보인다(이 시도는 이미 다른 나라에서는 많이 시도된 것이지만, 한국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시도이다). 그것은 부제가 정확하게 그 의도를 밝혀준다. “마태 공동체의 사회정치적 현실과 신학적 상징 세계” 그래서 각 논문들에서 저자는 마태공동체는 당시 지배 세력이었던 로마의 통치에 맞선 대안적 공동체로 그리고 있다. 나아가 신약 성경은 그 대안적 공동체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그래서 각각의 논문들이 그 주제에 맞춰서 설명되고 있다. 새로운 시도와 새로운 시각에서 마태복음을 바라본 저자의 시도와 해석은 분명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짧은 지식 때문인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첫째로, 신약 전공자들이 아니라면 보기가 어렵다. 논문을 모아 놓았기 때문에(그 논문의 대상이 신약 학자들 아니었을까?) 글도 내용도 어렵다.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둘째로, 저자의 시각이다. 이 책은 부제가 말해 주었던 것처럼 그리고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로마에 대항하는 마태공동체, 나아가 신약 성경을 한 가지 초점에 맞추어 해석을 하고 있다. 이것은 너무 한 쪽으로만 흘러들어 가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보통 사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는 “예수”와 그가 선포하셨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이 집중하고, 그 외 신약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한 예수”에 대해 집중한다고 흔히들 표현한다. 물론 그 외에도 초기 공동체에게 큰 문제가 되었던 거짓 교사, 이단, 은사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도 하다. 저자의 말대로 라고 한다면 예수가 오신 이유도 로마 공동체에 대항하기 위함인가? 예수의 고난도? 부활도? 거짓 교사들의 문제도? 공동체를 무너뜨리려 하는 교회 내부의 문제도? 로마가 무너진 다음에는 또 다른 로마가 있는 것인가? 한 공동체의 특별한 상황일 수도 있고, 조금 더 나가자면 특정 본문은 그런 형태를 나타낼 수 있겠지만, 신약 성경 아니면 좁게는 마태복음이라고 그 하나의 관점으로 전체를 풀어가기에는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 이 책에서 한 가지 가슴 뜨거운 글이 있다면 저자가 서론에서 말하는 그리고 본론 중간 중간에서 말하는 것처럼 눈만 뜨면 한 숨, 황폐한 땅 아무 소망도 없는 마태 공동체에게 예수의 나타나심과 그 분의 사역은 그들에게 소망과 희망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이런 소망이 대한민국과 각 사람에게 나타났으면 좋겠다. 예수님이 인간으로 다시 오시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린 이제 마태 공동체처럼 예수의 사역과 삶을 보며 희망을 품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예수님은 “살아계신 존재”이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다시 희망과 소망을 품을 수 있겠는가?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는 자들이 열매를 맺는 삶 아니겠는가? 우리가 서로를 보며 또한 예수를 모르던 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보며 예수를 발견하는 것만이 살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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