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에 흐르는 중요한 신학적 요지가 "땅과 자손"이라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어보았다. 그 외에도 중요한 주제가 많겠지만, 이 두 개의 주제는 특별한 대접을 받았던 것 같다. 그 중에서도 "땅"은 유대인들의 정체성 형성에도 큰 작용을 한 것처럼 보인다. 구약성서에서 흐르는 "땅"에 관한 이야기가 이스라엘 내부에서 어떻게 흘러갔는지 신약 학자 개리 버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8장에 거쳐서 "땅"에 관련된 이야기를 한다.
1. 성경의 유산
구약성서를 중심으로 하는 이 챕터에서는 당연 "약속의 땅"에 관련된 이야기에 집중한다. 족장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되는 약속의 땅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다. 또한 땅에 관한 하나님의 주요한 말씀 중에 하나는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을 소유하지는 못했다는 것과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 땅은 언약과 의와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그 땅은 언약과 의를 지키지 못한 이스라엘로 인해 상실되었다. 그러나 또 다시 하나님은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선물로 주셨고, 이스라엘은 땅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땅에서 살아가는 것은 유대인들의 정체성에 핵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랍비들에 의해 땅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었다.
2. 디아스포라 유대교와 그 땅
여러가지 이유로 디아스포라가 된 유대인들이 살아가는 땅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왜냐하면 성지보다 그 밖의 땅에서 사는 유대인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필론은 땅을 종말론적으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으로 해석하였다. 다시 성지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지혜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요세푸스도 필론과 유사하게 땅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우주의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 모든 땅이 속해있다고 보았다.
3. 예수와 그 땅
예수는 구약성서의 내용을 마치 단절하듯이, 땅에 대한 열망과 땅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메시지(예, 로마에 대항)는 거의 하지 않는다. 그는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땅에 대한 열망에 유대감을 가지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예수는 이 땅에서 그들이 볼 수 있는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라는 또 다른 "땅"으로 재해석하였다. 복음서에서 볼 수 있는 예수의 메시지에는 유대인들의 가슴속에 있던 땅에 대한 논쟁이 없었고, 오히려 그 땅을 반대한 듯한 모습을 가졌다.
4. 제4복음서와 그 땅
요한복음은 유대인들이 조롱하던 땅 "갈릴리"에 집중한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소위 "거룩한 땅"이라고 불린 예루살렘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였던 성전이 예수로 대체되었다고 강조한다. 예수는 거룩한 장소 그 자체가 된다. 요한은 과거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주신 공간적 장소인 땅에 시선을 두고 그것을 선물로 받아들였던 것에서, 진정한 선물인 예수 그리스도에 시선을 돌리게 한다. 요한의 땅의 신학은 기독론으로 완전히 대체된다.
5. 사도행전과 그 땅
디아스포라 유대인과 가까이 지냈던 누가는 이제 기독교인들의 정체성은 유대나 갈릴리가 아닌 더 넓은 세상에 있다고 강조한다. 정체성의 핵심을 땅에서 찾았다면 이제는 예수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메시아를 통해 오는 축복은 유대인들이 성지로 돌아와 유대 땅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땅과 건물(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와 일하심에 보증이 될 수 없었다. 이제는 문화, 지리적 경계를 넘어가야 했다. 그것이 기독교인과 교회의 사명이자, 정체성이었다. "초기 기독교 안에는 신학적 지역주의가 없었다"
6. 바울과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들
유대인들의 영토 중심주의를 너무 잘 알고 있었던 유대인 바울은 아브라함을 통해 진행된 땅의 유산에 대한 진정한 상속자는 예수라고 보았다. 그는 반유대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은 유대인들에게도 있지만, 이방인들에게도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아브라함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보편화 시킨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7. 바울 이후의 발전들
신약성서의 비교적 후대의 작품들은 예루살렘을 중심에 두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을 나그네로 본다. "땅"에 살고 있지만, 그들의 시선은 다른 곳에 있었다. 요한계시록에도 "땅"에 대한 언급은 많지만, 성지가 아닌 온 세상을 의미했다.
8. 땅, 신학, 그리고 교회
버지는 이 장에서 "기독교 시온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영토 신학"에 대해서 비판한다. 비판하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이들은 구약 연구보다는 몇 구절에 의존한다. 땅의 약속은 언약적 신실함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자신들의 세계관에 예언자들을 인용하지만, 예언자들의 메시지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이방인과 나그네였다는 것을 땅에 들어간 다음에는 잊어버린 것을 감지하지 못한다. 구약성서의 문맥을 무리하게 현재에 적용한다. 마지막으로 신약성서 저자들이 "영토 신학"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
버지가 했던 두 개의 중요한 말에 집중하고 싶다.
"그 땅의 소유권을 묻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질문이 아니다. 대신 신약은 우리가 그 소유주를 아는지, 또는 다른 틀로 말하면 그 땅이 우리를 소유하는지를 질문한다."
"성지를 다시 주장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영토를 재정복하며, 다른 종족을 배제하고 한 종족에게 종교적 특권을 부여하려는 외침들에 대해, 신약은 아니라고 말한다. 예수는 그런 것들을 멀리하는 신실함을 요구하였고, 더 나아가 종교적 특권으로 지지를 받던 영토 관련 주장들이 더 이상 설 수 없는 시대와 왕국을 마음에 품으라는 가르침을 남겼다."
* 책을 읽으며 여러 생각을 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약속의 "땅"에는 집중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거룩한 땅의 중심이었던 "성전"에는 여전히 집착하는 것으로 보인다. 신약성서의 저자들도 그랬지만, 땅과 성전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모든 것이 대체된 후, 그들은 "온 땅"을 향해 나갔다.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선교"를 나가라는 말이 아니라, 여전히 "집착"하고 있는 것에 물음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약속의 땅을 점령하기 위해 다른 이들을 배제하는 것과 "교회"를 집착하기 위해 다른 이들을 배제하지 않는 것 사이의 고민 말이다. 분명 초기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은 여러 가지로 그들의 정체성을 다르게 했다. 그것을 잘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