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 이현우 선생님은 한 인터뷰에서 도스토예프스키를 '정신병동의 셰익스피어'로 비유한 적이 있다. 아마 누군가 한 이야기를 인용하신 걸로 기억한다. 콘스탄틴 모출스키가 썼고, 그(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최고의 평전으로 꼽히는 책의 한글 번역판 부제는 '영혼의 심연을 파헤친 잔인한 천재'이다.
'정신병동의 셰익스피어, 영혼의 심연을 파헤친 잔인한 천재' 이 두 표현에서 무엇이 떠오르는가. 광인, 미치광이 등이 떠오를 것이다. 실제로 그의 삶은 혁명, 죽음의 문턱, 반전, 회심, 도박 등 미쳐야 경험할 수 있는 것들 채워져 있다. 이런 요소들은 반드시 그의 '문체'에도 녹아들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체는 인생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김연경 번역가(이하 김연경) 손에서 태어난 도스토예프스키는 저런 '미친 요소'들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봤다. 가장 큰 이유는 김연경의 담백한 문체가 아닐까.
악령 첫부분을 읽다가 하도 안 읽혀서 '번역이..'라고 생각해 소설 원문을 번역과 대조해서 좀 읽어봤다. 번역이 참 성실하단 생각이 들었다. 100자평을 보니 (,)의 남발을 문제 삼는 분도 있었는데,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렇게 쓴 문장을 그렇게 번역했을 뿐이다. 아마 소설 번역 전체에서 이런 성실함이 발휘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성실한 김연경의 문체랑 '미친 남자' 도스토예프스키랑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김연경의 소설 '다시 스침들'을 미리보기로 좀 읽어봤는데 문체가 아주 담백했다. 김연경에겐 좀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여기서 담백함은 부정적 의미로 무미건조하다는 뜻에 가깝다. 균일하게 맨들맨들 잘 다듬어진 벽돌들로 구성된 벽이 떠오른다. 누군가는 이런 벽을 보고 감탄할 수 있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 벽을 보면 부수고 싶은 욕망이 든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후자일 것이다. 김연경의 성실함과 담백함 속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광기는 사그라든다.
지금도 적지 않은 학생들이 러시아에서 유학을 하고 있을 것이다. 혹시 그 중 누군가 보드카 병나발 불고 길거리에 쓰러져 있다면 그에게 도스토예프스키 번역을 맡겨보고 싶다. 미친놈은 미친놈이 잘 안다.
*이런 글을 썼었구나. 역시 글과 말이라는 건 남는다는 측면에서 참 위험한 도구다. 읽으면 읽을수록 김연경 선생님의 번역은 빛이 난다. 믿고 읽을 수 있는 번역가 한 명이 있다는 점, 큰 행운인 걸 요즘 느낀다. (2021.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