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라는 하나의 조건을 바꾼다고 해서 모든 일이 마법처럼 달라지지 않는다. 주인공의 비장애인 가족들이 막연히 기대하듯 '제자리로' 돌아갈 수도 없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아주 짧은 소설 '움직임'과 '다시,기억' 두편이 담겨있는 [내가 하려는 말은]이다.
첫번째 소설 '움직임'은 (가상의) 시간적자폐스펙트럼을 앓고 있는 한나의 심리와 한나를 정상적으로 살아가게 해주고 싶은 부모님과 의사선생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나는 춤과 수치나 숫자를 손쉽게 외울 수 있는 재능을 타고 났다. 그러나 '정상적인 삶'을 위한 시술을 받으면 그 재능은 포기해야한다.
과연 정상적인 삶은 무엇일까?
시간적 자폐라는 가상의 장애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자폐스펙트럼을 겪고 있는 친구들은 주변에 종종 있다. '그들에게 정상을 강요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과연 정상적인 삶이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의 특징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며 함께 살아가는 시간을 위해 기다려주는 것은 어려운걸까?
'다시, 기억'은 치매를 앓고 있는 엘리엇과 그의 아내 그레이스를 중심으로 놓았지만, 시점이 엘리엇의 심리적자아라는 점이 특이하고 좋았다.
심리적 자아의 눈으로 인물들의 이야기하는 것이 더 간절하고 섬세하게 느껴졌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치매를 앓고 있고 그 가족들이 어쩔 줄 몰라한다고 들었다.
이 소설을 통해 치매환자와 가족들을 이해하고 나아갈 방향을 생각해 보게 된다.
소중한 이들을, 추억을, 시간을 잊게 되지만 그럼에도 한 인격으로 살아가야하는 삶.
그 삶이 오롯이 전해지며 겁이 나면서도 또 희망이 생긴다. 삶이다! 잊혀져도 잃어가도 삶이다. 기억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예전에 기억하는 그가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의 그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소중한 기억은 기억대로 두고, 그저 지금의 그로 살아가는 것이고 함께하는 것이다.
사실 나도 치매가 올까 두려울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그 또한 삶이겠지.. 가족들에게, 나를 아는 이에게 엘리엇처럼 "나는 그저 나"라고 용기내볼 수 있을 것 같다.
2주전. 어머니는 나에게 새로운 댄스화를 갖고 싶은지, 갖고 싶다면 무수 색깔이 좋을지 물었다. 나는 적합한 단어를, 조약돌처럼 매끈하고 단단한 단어들을 마음속에 모았다. 그렇지만 소리내어 말해도 소용은 없다. 내가 질문에 답을 할 때가 되면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했던 질문을 잊어버린다.- P16
발아래느 회전하는 지구를 느낀다. 나를 둘러싼 거대한 힘에 저항하기에는 너무 작은 입자인 나는, 우주 공간에 휘몰린다. 성층권으로 날아가지 않게 가방의 손잡이를 꽉 붙든다. 시간이 우리의 존재를 어떻게 만들어가는지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즐겁게 살아가는 삶은 어떤 걸까.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사는 삶은 어떤걸까.- P18
나도, 나 나름의 소박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닺 내 뇌 안의 연결들은 만들어지고, 살아남고 소멸한다. 내가 내리는 결정 하나하나가 내 영혼의 유전자형을 바꾼다.(중략) 나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다. 아침 식탁을 밝히는 커다란 창문이 고정된 존재가 아니듯이, 나는 날마다 나를 환대하지 않는 세상에 맞추어 가는 법을 배운다.- P41
"당신은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당신을 기억하니까. 우리가 당신을 도울거야. 두고봐"- P67
"느낀 바를 솔직히 말해요." 상담사는 매 회차마다 말한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다. 아니, 너는 느낀 그대로 말했으나 그들이 너의 말뜻대로 들어 주지 않는다.- P68
너는 혼란스러워하며 그의 뒷모습을 응시한다. 아프다. 그래, 마침내 가슴에 깊고 묵직한 통증이 찾아왔다. 주변이 갑자기 더 어두워진 것 같다.- P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