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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추리소설을 읽을 때 가장 실망하는 경우는 결말에 ‘한 방’이 없는 경우입니다. ‘아, 그래, 그런 거였어?’ 하고 끄덕끄덕하게 만드는 소설이요. <체육관> 시리즈가 그랬습니다. 뭐가 뭔지 다 알겠고 주인공의 소거법도 참으로 훌륭한데, 너무 교과서적이라 그냥 아쉽습니다. 잘 짜인 디즈니 영화 보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소설이든 영화든 저는 이야기가 이 두 가지 중 하나이기를 바랍니다. 차라리 충격적이어서 기가 막히던가 (마야 유타카), 아니면 이게 말인지 방구인지 구분이 안 돼서 기가 막히던가. (‘코스믹’), 이 소설은 전자인 경우입니다. 충격을 줍니다.
독자의 정수리에, 직방으로.
<방주>는 단순하지만 강렬한 설정에서 출발합니다. 여기, 방주 같은 시설이 있습니다. 지하에 숨겨진 비밀 벙커 같은 곳이죠. 주인공 일행은 여기 갔다가 일련의 사건을 통해 결국 고립이 됩니다. 갇힌 것도 서러운데, 상처에 소금 뿌리는 일이 벌어집니다. 물이 콸콸 차오르기 시작한 거죠. 일주일 안에 어떤 해결책이라도 내놓지 못하면 몰살 엔딩 확정입니다.
다행인 건, 탈출 방법이 하나 있다는 겁니다. 한 명이 용기를 내고 어떤 행동을 하면 문이 열려요. 다만 이 누군가는 무조건 죽습니다. 그것도 그냥 죽는 게 아니라 좁은 공간에서 천천히 물이 차오르길 기다려야 하는 느리고 끔찍한 익사입니다. 내가 희생하겠다 나서는 사람? 당연히 한 명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착잡한데. 이 상황에서 의문의 살인까지 벌어집니다.
그리고 주인공을 포함한 일행은 곧 같은 생각에 도달합니다. 여기서 ‘죽어 마땅한 인간’이 있다면 바로 그 범인이 아닐까.
과연 일행은 그 안에 범인을 찾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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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만 봐도 매우 흥미로운데, 이 소설의 진짜 재미는 지금부터입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생각해봅시다. 그래서 범인을 찾는다고 한들, 범인이 순순히 ‘그래, 희생할게’ 하고 따라줄까요? 녀석이 다 같이 죽자 물귀신 작전을 펼치면 어떡하고요? 고문을 한다고 쳐도, 막판에 버티고 안 열어주면 그만 아닙니까? 다시 말해 모두의 목숨은 온전히 범인의 손에 달린 셈입니다. 이보다 아이러니한 설정을 가진 클로즈드 서클, 저는 못 봤습니다.
생각보다 이야기의 양이 그리 많지는 않은 소설입니다. 단점이라기보다 장점입니다. 덕분에 촘촘하고 빨리 읽혀요. 심리묘사도 필수적인 부분만, 인물 묘사도 필요한 만큼만 합니다. 이런 선택과 집중이 이 소설의 질을 한 단계 높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 게, 추리소설 독자들은 작가가 인간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들길 바라며 책을 집어 들지는 않잖아요. 철저한 논리 대결과 범인 맞추기, 그리고 반전, 이 맛에 보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 소설은 거기 100퍼센트 집중하는 소설입니다.
미스터리 장르에는 하우던잇 (어케죽였냐), 후던잇 (누가죽였냐), 와이던잇 (왜죽였냐) 이 세 가지가 주요하게 작용합니다. <방주>의 주된 충격은 다름 아닌 와이던잇에서 옵니다. 물론 작가님이 남은 두 가지를 소홀히 하신 건 절대 아닙니다만 단지 그 ‘와이’가 너무 충격이라 다른 부분들은 뭐가 됐던 깡그리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 와이를 알아맞히실 수 있는 독자분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저는 마지막 부분을 읽기 전 다시 한번 정독해봤는데, 못 맞췄습니다. 감도 못 잡았어요.
<방주>는 훌륭한 ‘와이던잇’입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본 재미있는 클로즈드 서클 물이 <유리관의 살인>이었는데, <방주> 역시 그 못지않은 재미를 선사합니다. 그것도 더 적은 분량으로요. 둘 다 훌륭한 작품이지만 하나만 꼽으라면 저는 고민 없이 <방주>를 뽑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라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 이 소설은 절로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상황이 워낙에 원초적이고 극단적이어서 몰입하기도 쉽거든요.
글쎄, 저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어…. 뭘 하기는 했을까요?
참, 생각도 하기 싫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