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필요한 인간을 무료로 빌려주는 사이트가 있데.
온라인에서 도는 소문에 이끌려 찾아들어간 사이트에서 필요한 사람을 주문했다.
일터에서 돌아와 다시 집으로 출근하는 삶을 살던 워킹맘은 아들에게 들은 렌탈 사이트에서 '아내'를 주문한다. 가사일을 완벽하게 해주는 그녀 덕에 숨을 돌릴 수가 있게 되자 택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해외 지사 근무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아내를 맞이한 여성의 기쁨이 너무 생생하게 전해져서 나도 덩달아 기쁘고 즐거워졌다.
술에 취해 돌아온 부부에게 저녁식사를 강요하는 렌탈 아내의 태도가 좀 찝찝했지만
뭐, 이정도야, 문제될 게 뭐람? 이라며 읽어나갔다.
남편은 어느날 그만둬버린 배달일을 할 사람을 주문한다.
일당백. 식당에서 내가 없어도 상관없을만큼 일 잘하는 사람이 왔다.
덩달아 손님까지 늘어서 행복 만땅이다.
뭐가 문제야??? 자리를 비워도 상관없을만큼 잘해주는 직원이라니. 너무 행복해보이는데?
학교도 학원도 가기 싫은 학생은 나 대신 살아줄 아바타를 주문한다.
학원을 안가도 학교를 안가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게 서운했지만
그 자유를 마음껏 즐겼다. 즐겼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나의 부재를 눈치채지 못하면서 내가 서서히 무너져 간다.
렌탈인간이 선사해준 해방감은 달콤하고, 삶의 질은 수직 상승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육체적인 고단함도 렌탈인간으로 극복한다.
노동의 대행이라고 생각했던 렌탈 서비스는 서서히 '존재의 대체'로 변질된다.
나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메우는 타인의 존재는 역설적으로 '나'라는 존재의 무의미함을 증명한다.
렌탈인간이 내 역할을 더 훌륭하게 수행할수록, 주변 사람들은 나의 부재를 느끼지 못하고, 결국 진짜 '나'는 설 자리를 잃어간다.
작품 안에서 스마트폰에 매달려있는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자주 나온다. 작가는 알고리즘에 취향을 맡기고, AI에게 사고를 위임하며, 돈을 지불하고 감정 노동을 대신하게 하는 요즘의 끝에 렌탈인간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 였을까?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대체하고 싶었던 노력과 고통들이 실은 '존재 증명' 이 였다고 이야기하는 걸까?
개인적으로는 고통스러운 노력들이 존재의 증명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서
동의할 수 없는 맥락이 있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