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에 관한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단순한 첫 번째 사실은 문해력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 말은 어린 독자에게는 읽기에 필요한 신경회로를 발달시킬 유전적 프로그램이 없다는 뜻이지요. 읽는 뇌 회로가 형성되고 발달하는 과정에는 자연적인 요인과 환경적인 요인이 모두 영향을 줍니다. 환경적 요인에는 읽기의 습득과 발달 과정에서 사용되는 매체도 포함되지요. 각각의 읽기 매체는 서로 다른 인지 과정을 촉진합니다. 다시 말해 어린 독자의 경우 완전히 발달한 전문가 수준의 읽는 뇌에 체화된 다중적 심층-독서의 전 과정을 발달시킬 수도 있는가 하면, 초보자 수준의 읽는 뇌에서 발달 중인 단축-회로를 만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아예 다른 회로 안에 완전히 새로운 신경망을 구축할 수도 있지요.
어린아이의 읽기 회로가 형성되는 동안 어떤 과정을 따르느냐에 따라 읽고 생각하는 방법에도 심대한 차이가 생깁니다.- P30
저는 이 책을 통해 과거에 제가 했던 작업보다 훨씬 멀리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각각의 편지는 제가 이전에 다른 곳에서 다루었던 모든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저의 최근 논문과 저서에 소개한 연구 내용이 많습니다. 각 편지와 관련하여 참고할 만한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책뒷부분에 방대한 주석으로 붙였습니다. 두 번째 편지는 저의 연구 성과를 가장 많이 담고있지만, 사실 가장 가벼운 마음으로 쓴 것이기도 합니다. 읽는 뇌에 관한 지식을 색다르게 풀어낸 내용이 담겨 있지요. 이를 통해 어떻게 읽는 뇌 회로의 가소성이 사고의 복잡성을 점증시키는지, 또한 이 회로가 무슨 이유로 어떻게 변하는지 명확히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편지는 독자의공감과 추론 능력에서부터 비판적 분석과 통찰에 이르는, 깊이 읽기의 핵심적인 과정으로 안내합니다. 이 세 통의 편지에서는 다양한 매체의 특성, 구체적으로는 인쇄물을 읽는 것과 스크린을 읽는 것이어그렇게 뇌 회로의 가변적 연결망뿐 아니라 우리가 읽는 방식과 내용에또 반영되는지를 검토하기 위한 공통의 토대가 제시됩니다.
읽는 뇌의 가소성이 함축하는 의미는 결코 단순하지도 일시적이지- P34
도 않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읽느냐와 무엇이 씌어 있느냐의관련성은 우리 사회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계속 직면하는 정보 과잉의 환경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쉽게 소화되고밀도도 낮으며 지적인 부담도 적은 정보들로 둘러싸인 익숙한 골방으로 뒷걸음치고 싶다는 유혹을 느낍니다. 한눈에 들어오는 정보의 조각들이 매일 쏟아져 나오면서 우리는 모든 것을 안다는 착각에빠지지요. 그 때문에 눈앞의 복잡한 현실에 대한 비판적 분석은 뒤로밀릴 수도 있습니다. 네 번째 편지에서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릅니다. 민주사회에서 비판적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런 능력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빠르게 퇴화하는지 논의합니다.
다섯 번째 편지부터 여덟 번째 편지에서 저는 미래 세계를 살아갈아이들을 위해 ‘읽기의 전사‘로 변신합니다. 여기서는 아이들의 지적, 사회-감성적, 윤리적 형성에서 읽기가 하는 다양한 역할들을 지키는 문제에서부터 점차 사라져가는 아동기의 여러 모습들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걱정스러운 일들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많은 부모와조부모가 제게 우려 섞인 질문들을 던졌습니다. 사실 그 질문들은 칸트가 제기했던 세 가지 질문으로 요약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아는가?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
여섯 번째 편지부터 여덟 번째 편지에서는 뇌 회로의 발달에 관해 제안을 하는 동시에 세 가지 질문에 대한 제 생각을 소개합니다. 그중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다소 예상 밖의 제안처럼 보일 수도 있을양손잡이 읽기 뇌biliterate reading brain 를 만들기 위한 계획일 것입니다.- P35
양손잡이 읽기 뇌를 목표로 하지만 이 책 어디에도 이분법적 해법은 제시되지 않습니다. 지금 제가 진행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연구중에는 글로벌 문해력 향상을 위한 사업도 포함돼 있습니다. 이 사업을 통해 저는 학교가 없거나 시설이 부실한 지역에 사는 아이들의 문맹을 낮춰줄 디지털 태블릿의 설계를 공개적으로 주창하고 지원합니다. 그러니 저를 디지털 혁명의 반대자로 생각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사실은 모든 아이들이 사는 곳과는 상관없이 어떤 매체로든 깊이읽기를 훈련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매체에 관한 지식을 갖추어야 할니다.
이 편지를 통해 독자 여러분은 관련된 핵심 이슈들을 살펴볼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은 여러분 자신에 대해 생각해봐야 합니다. 마지막 편지는 여러분이 변화하는 시대에 진정 ‘좋은 독자‘란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보시기를, 그리고 그런 사람이 민주사회에서맡고 있는 더없이 중요한 역할에 관해 성찰해보시기를 청합니다. 오늘날 그런 역할은 정말 중요해졌습니다. 현재의 맥락에서 좋은 독자란 글의 해독 능력과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예전에 프루스트가 독서의 핵심이라고 했던 저자의 지혜를 넘어 자신의 것을 발견해내는 것이야말로 좋은 독자의 조건이니까요.
좋은 독자가 되는 지름길은 없습니다. 하지만 좋은 독자가 되도록이끌어주고 유지해주는 삶은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사회에는 세 가지 삶이 있다고 썼지요. 하나는 지식과 생산의 삶, 다른 하나는 그리스인 특유의 이해 속에서 나오는 즐기는 삶. 마지막은 관조- P36
의 삶입니다. 좋은 독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 편지에서는 좋은독자와 좋은 사회가 어떻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세 가지 삶을 구현하는지 자세히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지금 우리 문화에서는 세 번째삶인 관조의 삶이 매일 위협받고 있지요. 누구도 다가올 세상을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런 세상에서 살아갈 다음 세대에게는 자율적인 정신의 삶이 필요하고, 읽기가 그런 삶의 기초가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경과학과 문학 그리고 인간 발달의 관점에서 볼 때그런 생각이 듭니다. 지금 우리의 읽는 뇌에서 일어나는 통찰과 성찰을 뒷받침하는 자기 확장적이고 포괄적인 과정이야말로 삶을 증진해주는 디지털 시대의 다중적인 성취들에 수반되는 인지적, 감성적 변화에 대한 최선의 보완물이자 해독제가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장 사적인 마지막 편지에서 여러분과 저는 스스로를마주하고 질문해볼 것입니다. 우리는 좋은 독자로서 세 가지 삶을 살고 있는지, 은연중에 세 번째 삶으로 들어가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은아닌지, 읽기라는 우리의 고향을 아예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 그렇게 확인하는 과정에서 저는 읽는 뇌가 간직한 관조의 차원을 육성하고 보호해야 비로소 우리 공동의 지성과 연민, 지혜를 최상으로 유지하고 전수할 수 있다고 제안할 것입니다.
커트 보니것은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을 광산의 카나리아‘에 비유했지요. 예술가와 카나리아 둘 다 우리에게 위험을 경고해줍니다. 읽는 뇌는 우리 정신의 카나리아입니다. 그것이 경고하는 바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최악의 바보가 될 것입니다.- P37
언어와 사고가 위축되고 복합성이 줄어들며 모든 것이 점점 같아질때, 우리의 사회 정치는 종교 조직이나 정치 조직 내의 극단주의자들로부터든, 그보다는 덜 명확하게 광고주들로부터든 큰 위협을 받게됩니다. 집단이나 사회 또는 언어 내의 동질화는 잔인하게 강제되는미묘하게 강화되든, 결국 다른 것, 즉 ‘타자‘라면 무엇이든 제거하는방향으로 치닫을 수 있습니다. 사회 내부의 다양성 보호는 헌법이 존재하기 훨씬 오래전부터 우리의 유전적 신경다양성 cerebrodiversity에도구현돼 있는 원리입니다. 유전학자와 미래학자는 물론, 보다 최근에는 토니 모리슨이 저서 《타자들의 기원 The Origin of Others》에서 썼듯이.
다양성은 우리 종의 발전은 물론, 우리가 사는 상호 연결된 지구상의삶의 질, 나아가 우리의 생존까지 증진합니다.
이런 중대한 맥락에 비춰볼 때 우리는 언어의 풍부하고 확장적이며 거침없는 사용을 보호하고 보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인간의 언어는 잘 양육되면 무한한 상상 밖의 생각을 창조해낼 가장 완벽한 도구를 제공하는가 하면, 우리의 집단적 지능을 발전시킬 토대를제공하기도 합니다. 그 역도 참입니다. 그 함의를 생각하면 우리 모두 방심할 수 없습니다.- P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