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사과
안동 다녀오는 길에 문경에 들러가을빛 환한 사과밭에 간 적 있었다.
맛보기로 내놓은 두어 조각 맛보고 나서 주인의 턱 허락받고
벌레 먹었나 따로 소쿠리에 담긴
못생긴 사과 둘 가운데 하나 집어 들고
한입 베어 물었지.
입에 물린 사과,
입꼬리에 쥐가 날 만큼 맛이 진했어.
베어 문 자국을 보며 생각했지.
사과들이 모두 종이옷 입고 매달려 있었는데
이놈은 어떻게 벌레 먹었을까?
주인 쪽을 봤지만
그는 다른 고객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었어.
혹시 이 세상에서 진짜 맛 들려면
종이옷 속으로 벌레를 불러들일
그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
제 몸 덜어내고
벌레 먹은 과일 소쿠리로 들어가야하는가?
초가을 볕이 너무 따가웠다.
상자 하나를 차에 실었다.- P12
마음 기차게 당긴 곳
인터뷰 도중 물어 왔다.
오래 사시면서 여행도 많이 하셨습니다.
이 세상 그 어디가
선생의 마음을 가장 기차게 당긴 곳입니까?
괭이갈매기들 정신없이 나는 강화 펄에만 가도
바다 안개 불현듯 밀려와
해와 섬과 갈매기를 한꺼번에 삼키고
물소리만 남겨
그곳을 밑바닥부터 바꾸기도 하는데,
물소리만 남고 앞이 안 보이는 풍경이
그 어느 풍경보다 마음 더 조이게도 하는데,
어떻게 세상 어느 한 곳을 딱 짚어
마음 가장 기차게 당긴 곳이라 할 수 있겠는가?
며칠 전 집 발코니에서 홀린 듯 내다본
다른 세상 불길처럼 정색하고 샛노랗게 타오르던
은행나무들이 떠올랐다.
머뭇머뭇 들고 있던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고 답했다.
내 살고 있는 그렇고 그런 늘은 아파트도
해마다 두어 차례
멍 기차에 때리는 공간 됩니다.- P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