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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거장들은 미술 작품에 그들의 모든 것을 바치고 작품 때문에 고통을 받으며 심혈을 기울였으므로, 그들은 우리에게 최소한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미술 작품을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요구할 권리는 있는 것이다.
- P34
미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가 『서양미술사」에서 한 말입니다. 그의 영향력은 매우 커서, 우리는 ‘거장‘이 만든 ‘위대한‘ 작품에 감탄하면서 열심히 화가의 이름과 제목, 제작 연도를 외워 교양을 쌓아왔지요. 그러나 저는 곰브리치의 주장에동의하지 않습니다. 왜 ‘예술‘ 생산 행위는 신성시되고, 예술가들은 ‘천재‘라며 신화화되는 걸까요? 신분제가 붕괴되고 모두가 평등한 권리를 지니는 시민사회가 되었는데, 왜 우리는 신분제 사회에서 만든 시각 문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할까요?
현재 한국의 미대에서 널리 사용하는 미술사 교재인 『서양미술사』는 1950년에 초판이 나왔습니다. 이 책은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대영제국의 훈장과 기사 작위를 받은 곰브리치가냉전 시대에 썼는데, 그의 관점을 아직까지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면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서양미술사‘라고는 하지만곰브리치가 다룬 서양의 범위와 시대는 매우 협소합니다. 게다가 1994년에 16판을 낼 때까지 여성 미술가는 단 한 명도 다루지 않았습니다. 케테 콜비츠는 『서양 미술사』가 최초로 언급한 여성 미술가인데, 독일 표현주의 미술가 두 명을 추가하기 위해 그들에게 영향을 준 콜비츠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과 관점을 정한 후, 특정한 이미지만을사람들에게 공급하는 것은 곰브리치처럼 권위를 가진 학자들- P35
•만이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미디어도 그것을 닮았는데, 특히 분쟁을 다루는 프로그램은 미디어가 누구의 입장에 서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강대국의 편에 선 카메라는 최신 폭격기가민가에 포탄을 퍼붓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고, 독재 정권의 통제를 받는 언론은 시위 현장에서 일부의 과격한 모습이나 위법행위를 중점적으로 보여줍니다.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는 ‘무엇을 사실로 만들 것인가‘와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즉, 이미지를 보여주는 권한을 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수많은 정보 중 몇가지만을 선택하여 ‘사실‘이 되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이지요.
하나의 이미지라는 것은 재창조되거나 재생산된 시각이다.
모든 이미지는 하나의 보는 방식을 구현하고 있다.
한 이미지는 X라는 사람이 Y라는 대상을 어떻게 보았는지에대한 기록이 된다.
이미지 외에 어떤 과거의 유물이나 문서도, 다른 시대의 사람들이 살았던 세계에 대해 직접적으로 증언해주지는 않는다. 이런 점에서 이미지는 문학보다 더 정확하고 풍부하다.
이것은 존 버거가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서 한 말입니다.
우리는 정답이 정해진 사회에서 빠른 속도에 적응하여 사느라- P36
무언가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기회가 적었습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은 교과서 내용을 이해한 후에 자신의 관점으로해석하거나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억했다가 시험에서 정해진 ‘정답‘을 맞히는 것이었으니가요. 의심을 품는 순간 생각이 많아지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으니 기억에 혼란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제한된시간 내에 ‘정답‘을 찾아낼 수 없고, ‘낙오자‘ 취급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생존‘ 또는 ‘성취‘, 사실은 ‘성공!‘이라는 것을 위해 우리 앞에 놓인 것들을 곧이곧대로 믿고 받아들이도록 훈련받았죠.
이미지는 생산자의 의도가 담긴 기록물입니다. 시민사회 ‘미술‘이라는 것이 발명되기 전에는 교회나 귀족이 그 ‘의도‘를 통제했습니다. 근대사회에 이르러 ‘개인‘이자 ‘주체‘가 된 예술가도 지배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특히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 기득권을 가지고 있다면 더더욱 의심없이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재현하여 보여주었겠지요.
이제부터 과거에는 여성과 남성을 어떻게 다르게 재현했는지 본격적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대중매체가 발달하기 전에는 그림이 작품을 보여주었으니까요. - P37
서양미술에서 재현해온 여성은 남성을 위해, 좀 더 정확하게.
는 남성을 돌보기 위해 존재합니다. 여성은 남성의 정서적 안•정이나 생존 욕구 해결을 위한 돌봄 담당자. 어머니 · 성모마리아 또는 남성의 성적 욕구 충족을 위한 살덩어리 · 구멍으로만여겨집니다. 여기에 종교의 영향으로 금욕주의가 자리 잡으면서 여성은 남성의 성적 욕구를 자극하여 남성이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유혹하는 존재, 즉 악의 상징으로 사용되거나, 남성의 성적 욕구를 포장하기 위해 신성하고 아름다움을상징하는 존재로 둔갑했습니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교과서나 대중매체, 미술관·박물관에서 보는 거의 모든 그•림을 유럽 강대국의 백인 남성 화가가 그렸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실력을 인정받았더라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 화가들의 사회‘에서는 구성원이 될 수 없었습니다.- P58
"한 이미지는 X라는 사람이 Y라는 대상을 어떻게 보았는•지에 대한 기록이 된다"고 했던 존 버거의 말을 다시 떠올려봅시다. 교과서나 대중매체, 상품 디자인,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이미지들을 생산한 X는 ‘백인, 남성, 중산층, 지식인, 이성애자, 비장애인, 비청소년, (성평등 개념이 없던)전/근대인‘이 주축을 이룹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눈으로 본, 그들이 원하는 대로 규정되고 상상되었던 여성은 실제의 모습과 상관없이•철저하게 대상화되고 왜곡되어왔다는 것을 다음 장에서 집중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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