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들꽃님의 서재
미술에 뿌리 깊게 또아리를 튼 이데올로기

위대한 거장들은 미술작품에 그들의 모든 것을 바치고 작품 때문에 고통을 받으며 심혈을 기울였으므로, 그들은 우리에게 최소한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미술작품을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요구할 권리는 있는 것이다.

미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가 「서양미술사」에서 한 말입니다. 그의 영향력은 매우 커서, 우리는 ‘거장‘이 만든 ‘위대한‘ 작품에 감탄하면서 열심히 화가의 이름과 제목, 제작 연도를 외워 교양을 쌓아왔지요. 그러나 저는 곰브리치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 ‘예술‘ 생산 행위는 신성시되고, 예술가들은 ‘천재‘라며 신화화되는 걸까요? 신분제가 붕괴되고 모두가 평등한 권리를 지니는 시민사회가 되었는데, 왜 우리는 신분제 사회에서 만든 시각 문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할까요?
현재 한국의 미대에서 널리 사용하는 미술사 교재인 『서양미술사』는 1950년에 초판이 나왔습니다. 이 책은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대영제국의 훈장과 기사 작위를 받은 곰브리치가 냉전 시대에 썼는데, 그의 관점을 아직까지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면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서양미술사‘라고는 하지만 곰브리치가 다룬 서양의 범위와 시대는 매우 협소합니다. 게다가 1994년에 16판을 낼 때까지 여성 미술가는 단 한 명도 다루지 않았습니다. 케테 콜비츠는 「서양 미술사」가 최초로 언급한 여성 미술가인데, 독일 표현주의 미술가 두 명을 추가하기 위해 그들에게 영향을 준 콜비츠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과 관점을 정한 후, 특정한 이미지만을사람들에게 공급하는 것은 곰브리치처럼 권위를 가진 학자들만이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미디어도 그것을 닮았는데, 특히 분쟁을 다루는 프로그램은 미디어가 누구의 입장에 서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P34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