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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님의 서재

사라토리씨의 미술관람에는 적당히 무지한 상태가 꼭 필요한 듯했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빈센트 반 고흐(1853-90)회작품은 외려 관람하기 어려웠다.
나는 젊은 시절부터 고흐라는 인물에게 내 나름 흥미가 있었다. 수십만에 달하는 인파에 뒤섞여 고흐 특별전을 보기도했고, 도록을 구입하고 책을 읽으며 고독과 광기로 채색된 그의 인생을 상상했다. 프랑스에서 살 때는고흐가 살았던 마을을 방문해 그가 동생 테오와 함께 묻힌 묘지도 둘러보았다. 그덕분에 내 속에는 일정한 고흐의 이미지가 만들어졌고, 어떻게해도 그의 인생과 작품을한데 엮어서 볼 수밖에 없었다. 다시말해 선입견이 생겨난 것이다. 작품의 배경을 아는 것은 예술관람에서 결코 나쁘기만 한 일이 아니지만, 새삼 신선한 감각으로 작품을 보려고 하니 아무래도 어려웠다.
만약 내게 고흐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다면, 과연 그의 그림을 보고 진심으로 감동할까. 흐물흐물한 게 꺼림칙한 그림이라고 느낄지도 모르고, 역동적인 붓놀림에 ‘오오오!‘ 하고 감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이 알고 있는 나로서는 어떤지 알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적당히 무지한 상태란 좋은 것이었다. 선입견 없이 무심하게 그저 작품과 마주할 수 있으니까. 마치가이드북 없이 다니는 나 홀로 여행처럼.-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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