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모던'한 공간의 모습을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다. 그 즐거움이 느껴지는 단편이 <장마>가 아닌가 한다. 한국에서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냄새, 이미지, 추억이 반드시 있을 '장마'. 1930년대 이태준이 비내리는 어느 장마철, 서울거리를 오락가락한 하루의 일과와 상념, 생활에 대한 연민 들이 이슬비처럼 부슬부슬 내린다. 그렇지만 작가는 따뜻한 눈길로 일상을 감싸안고 있다. 일제시대에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피흘리는 투쟁, 지독한 가난, 허무만이 있지는 않았나 보다. 나는 작가의 선량함, 평범한 서울사람들의 자질구레한 삶이 맘에 든다.
<달밤>의 주인공 이름은 황수건이다. 성석제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속의 주인공, 황만근의 할아버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조금 모자란, 그러나 위선과 가식과 회칠이 없는 이런 인물들. 이런 인물들은 내 어린시절 우리 동네에도 있었다. 그들은 세속에 재빨리 물들어, 날쌔게 살아가는 법을 익히지 못한다. 그래서 가난하고 뒤로 밀려난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강둑 강바람 속에서 잎사귀를 흔들며 서 있는 미루나처처럼 아름답게 빛나기도 한다.
한국처럼 세상살이가 각박한 사회에 황수건 같은 인물은 어찌보면 우리 사회 건강함의 척도가 되는 것같기도 하다. 미치 일급수에 사는 버들치처럼. 그래서 작가들은 이런 사람들의 삶을 외면할 수 없나보다. 그래서 유독 ' 황씨'류의 삶에 눈길이 오래도록 머무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