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올빼미 농장
내 어렸을 적 친구는 앵무새들을 키우며 살았네.
울타리도 지붕도 없는 이상한 집에서…
인간은 생명을 유지하려는 에로스와 자신을 파괴시키고자 하는 타나토스 간의 긴장 속에 살아가는 존재다. 둘은 기계적으로 균형을 이루지 않고, 종종 한 쪽에 힘에 휘둘리기도 하면서 가능한 평형을 맞추려고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시도는 거의 실패로 끝나게 된다. 에로스의 끝, 그곳에는 성적인 세계가 존재하고 타나토스의 끝에는 죽음의 세계가 존재한다. 너무나 강력한 에로스를 누리다가 상실해버린 사람은 그만큼의 빈 공간을 자기 파괴적 충동인 타나토스에 내주기도 하는 등 두 ‘에너지’는 표현되는 방식만 다를 뿐, 그 성질은 유사하다.
백민석 작가의 ‘죽은 올빼미 농장’은 에로스와 타나토스 사이 휘둘리는 인간의 작태를 관찰할 수 있는 재밌는 소설이다. 주인공이 자신에게 잘못 배송된 편지의 발송지인 ‘죽은 올빼미 농장’을 찾아나서는 것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도시에서만 자라왔던 그에게 농장은 기분 전환삼아 가는 곳이었다. 아파트먼트 키즈가 지니는 날 것, ‘자연’에 대한 동경이었을까? 하지만 농장에 대해서 알려고 하면 알수록 미궁에 빠지게 되고, 공교롭게도 그것을 기점으로 그의 일상이 균형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스스로 ‘남자’임을 벗어나고 싶은 작곡가 후배, 부유한 아버지의 지원을 통해 가수로 데뷔하려는 여고생, 뽕짝을 벗어나 제대로 된 기획사를 차리고 싶은 김실장… 각자의 에로스들은 폭죽처럼 자신의 빛을 내며 섞여 들어간다.
그 중, 가장 크게 빛나고 싶었던 한 별은 이내 자신의 빛을 잃고 그 상실감은 그 주변에 거대한 블랙홀을 드리워 폭력과 죽음의 길로 자신의 발을 내딛는다. 자신의 모순을 버티지 못한 이의 죽음에 목도한 주인공은 ‘삶’이라는 모순과 미스터리 속에서도 어떻게 ‘살아가야하나’는 고민 속에서, 주인공 자신이 품고 있었던 모순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를 얻게 된다.
200쪽에 약간 못 미치는 중편 소설에서, 그 짧은 분량치고는 많은 향기를 이 책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여행, 무의미한 섹스,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복잡해지는 미스터리 등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는데,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가 순례를 떠난 해,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등 하루키의 저작들을 재밌게 읽었다면 이 책이 이야기를 풀어놓는 방식에 큰 낯섦을 느끼지 않으리라고 본다. 정신병, 상실감 등 소설을 풀어감에 있어 주요 소재가 겹치는 게 이유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우리 주변에서 종종 목도하지만 우리가 애써 무시하고 넘어가는 ‘부조리’에 대한 조명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이 책을 높게 판단한다. ‘죽은 올빼미 농장’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샘이 말라버린 들판과, 주인공과 그의 오랜 친구가 들른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 등 버려지고 방치된 ‘상실의 공간’들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들어나는 소설이었다. 그 농장과 아파트는 누군가의 터전이고 고향이라는 점에서, 태어는 났으나 결코 자신이 태어난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