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이 글은 출판사 김영사(비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엔드 오브 맨 The End of Men》은 남성만을 노리는 치사량 90%의 감염병이 대유행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책을 다 읽고나서 든 생각은 죽음은 참 무겁다는 것. 책 소개를 읽었을 때에도, 두꺼운 책을 받았을 때에도 이렇게 무거우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남성"의 죽음이 가족의 죽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실감한 적 있을까?
바이러스가 노리는 것은 남성들이었지만, 여성들 또한 안전하지 못했다. 자신의 아버지를, 남편을, 아들을 잃어버릴 위험에 여성들은 신음했다.
책은 여러 사람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스코틀랜드의 의사 어맨더, 영국의 교수 캐서린, 캐나다의 바이러스학 박사 리사, 미국의 병리학자 엘리자베스, 영국 정보국에서 일하는 던, 그 외의 많은 사람들...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하며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감염병의 유행 이후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소중한 이를 잃은 이에게 어떤 말을 건넬 수 있을지. 허구의 소설이지만 독자들은 꽤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혼란한 상황 속에서도 세계와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의 존재 같은 것 또한 포함해서 말이다.
이토록 생생하게 팬데믹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려낸 책이 처음 집필된 시기가 2018년이라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마치 작가가 직접 겪어본 것만 같이 인물들이 살아 움직인다. 어느새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위로를 건네고 싶을만큼.
그렇다고 이 책이 남성을 잃은 여성의 슬픔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책인가? 라고 물으면 나는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이 책은 그저 수많은 사람들-특히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가족을 잃은 여성들과 잃지 않은 여성들, 남성들이 사라져 고위직에 오른 여성들과 살아남은 소수의 남성들... 남성 중심 사회가 붕괴하고 다수가 된 여성에 맞춰 개편된 사회를 보고 있자니 통쾌한 한편 현실이 떠올라 묘하게 불쾌해진다. 하지만 불쾌함은 성찰과 깨달음을 동반하는 법이니 반갑기 그지없다.
465쪽의 긴 분량을 가진 책이지만, 한 번쯤 읽어보기에 충분한 가치를 지닌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제공해준 출판사 김영사(비채)에 감사의 말을 전하며, 놀리테 테 바스타르데스 카르보룬도럼!(이 말의 뜻은 책을 읽으며 알아가길 바란다. 이미 알고 있다면, 당신의 지식에 감탄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