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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rus님의 서재
  •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패트릭 브링리
  • 15,750원 (10%870)
  • 2023-11-24
  • : 118,137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정답일까? 가끔 우리는 길을 잃는다. 삶의 지향점을 잃은 채 멈추는 때가 온다. 나 역시 그랬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기꺼이 나를 갈아넣을 만큼 사랑했던, 그리고 그 사랑의 깊이만큼 또 지긋지긋해했던 애증의 회사를 그만두고 난 뒤 한동안, 상실감으로 허탈했고 그로 인한 슬픔에 무능력해졌다. 그때 나를 구해준 것은 책이었다. 세 아이를 재우고 난 뒤 서재로 숨어들어 책을 펼쳤다. 책은 상실을 메꿔주었고, 상실로 인한 슬픔을 치유해주었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도, 해내야 하는 목표가 없어도 나는 조금씩 행복해지는 법을 배워나갔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숨어든 한 경비원처럼 말이다.





저자는 대학 졸업 후 "뉴요커"에 입사해 뉴욕 중심가의 고층 빌딩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사랑하는 형 톰이 시한부 진단을 받고 세상을 떠난다. 살아갈 힘을 잃은 그는 자신이 아는 공간 중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일자리에 지원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지원해 면접을 보고, 훈련을 받고, 근무복 치수를 재는 과정에서 비로소 자신의 삶이 방향을 잡았다고 느꼈다. 미술관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그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은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망을 보는 것. 두 손은 비워두고, 두 눈을 크게 뜨고, 아름다운 작품들과 그것들을 둘러싼 삶의 소용돌이 속에 뒤엉켜 내면의 삶을 자라게 하는 것(p.33~34).


저자는 아름다운 작품들을 보며 형과의 기억을  떠올린다. 자신의 방식대로 애도하며 상실을 치유한다. 




초상화의 주인공은 긴 머리에 턱수염을 길렀지만, 그것들이 그의 천사 같은 얼굴을 가리지는 못한다. 온화하고, 생기 넘치고, 젊음으로 가득한 얼굴이다. 그는 생각에 잠겨 있으면서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자신도 모르는 듯하다. 표면적으로는 그가 장갑을 벗는 순간을 포착한 그림이지만 단지 짧은 찰나를 보는 것 같지가 않다. 그림 안의 시간은 한순간에 얼어붙었다기보다 흘러들어 고인 느낌이다. (...)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p.46



 


저자는 티션이 젊었을 때 그린 <남자의 초상>을 보며 죽은 형을 떠올린다. 자신의 선반에 있는 톰의 사진들. 결혼식 날 건장하고, 소년처럼 행복한 표정의 형, 박사 학위 수여식 때 암 때문에 벗겨진 머리를 헐렁한 박사모로 가린 수척한 형, 그리고 어린 시절의 모습들. 형에 관한 모든 순간과 수많은 기억은 낣아진 사진들처럼 시간 속으로 사라져버릴 듯 위태롭다. 그러나 눈을 감으면 언제라도 떠올릴 수 있는 기억들이다. 그 기억은 티션의 초상화와 매우 비슷하다. 밝고, 더 이상 단순화할 수 없고, 퇴색되지 않는 이미지다.


늦은 밤, 크리스타 형수와 미아, 타라 그리고 내가 형을 돌보고 있었다. 형이 하는 말은 더 이상 앞뒤가 맞지 않던 시기였다. 그런데 그런 형이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치킨 맥너깃을 먹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맨해튼의 밤거리로 뛰어나가 소스와 치킨 너깃 한 아름 사 들고 돌아오던 그때보다 더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 침대를 둘러싼 채 우리는 우리가 아는 최선을 다해 사랑과 슬픔과 웃음이 가득한 소풍을 즐겼다. 

돌이켜보면 그 장면은 피터르 브뤼헐의 <곡물 수확>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p.164



누군가를 잃고 나면 삶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한동안 그 구멍 안에 몸을 움츠리고 들어가 있게 된다. 저자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아름다운 작품들을 지키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다시 일상의 리듬을 되찾는다. 스스로가 영원히 숨을 죽이고 외롭게 살기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결혼한 지 정확히 5년이 지난 후, 그리고 형이 떠난 지 거의 5년이 지난 때에 아들이 태어난다. 아이를 기르기 위해 세상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는다!





세상이 이토록 형형색색으로 화려하고 충만하며, 그런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며,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들을 정성을 다해 만들려는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이 신비롭다. 예술은 평범한 것과 신비로움 양쪽 모두에 관한 것이어서 우리에게 뻔한 것들, 간과하고 지나간 것들을 돌아보도록 일깨워준다. 예술이 있는 곳에서 보낼 수 있었던 모든 시간에 고마운 마음이다. 나는 다시 이곳에 돌아올 것이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p.324



저자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미술관 안에서 벌어진다고 생각했었고, 명상과 같은 고요함을 감사한 마음으로 음미했다. 하지만 더 이상 자신이 고요하고 정돈된 환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긴 애도를 마치고 삶으로 돌아간다. 예술작품이 건네는 완벽한 위로와 치유를, 저자의 아름다운 글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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