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시간의 파편들이 한데 모여 인생을 이루고, 무수히 다양한 개인이 한데 모여 거대한 삶을 이룬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귀기울여 듣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고, 자세히 눈여겨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매우 사소한 것들의 이야기다. 사소한 것들이 모여 층층이 아름다운 삶을 이루며 아주 작은 사소한 것이 삶을 전복시키기도 한다.
펄롱은 빈주먹으로 태어났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p.15
주인공 빌 펄롱은 빈주먹으로 태어났다. 펄롱의 엄마는 열여섯 살 때 미시즈 윌슨의 집에서 가사 일꾼으로 일하던 중 임신을 했고 가족에게 버려졌다. 미시즈 윌슨은 펄롱의 엄마를 해고하지 않고 그 집에서 지내며 일할 수 있게 해줬고, 펄롱이 태어나던 날 엄마를 병원에 데려가고 둘을 집으로 데려왔다.
아버지가 없는 아이, 아버지가 누군지조차 모르는 아이였던 펄롱은 학창시절 내내 친구들의 괴롭힘을 당했지만, 성실하게 학교를 다녔다. 그는 자라서 석탄, 토탄, 무연탄, 분탄, 장작을 파는 일을 업으로 삼아 다섯 딸과 아내를 부양하는 가장이 되었다. 펄롱의 어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뇌출혈로 돌길 위에 쓰러져 죽고 말았다. 펄롱은 어머니를 잃은 동시에 자기 아버지가 누구인지 물어볼 기회도 잃은 셈이다.
경제적으로 혹독한 시절이었다. 실업수당을 받으려는 사람들 줄이 점점 길어지고, 전기 요금을 내지 못해 창고보다도 추운 집에서 지내며 외투를 입고 자는 사람도 있었다. 펄롱은 이렇게 힘든 시기일수록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딸들이 잘 커서 도시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학교인 세인트마거릿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도록 뒷바라지하겠다고 결심한다.
삶이 다음 단계로, 다음 할 일을 찾아서 쉼없이 흘러가는 와중에 이따끔 펄롱을 멈춰 세우는 질문 한 가지가 있었다. '내 아버지는 어디에 있을까?' 그는 자기도 모르게 나이 많은 남자의 얼굴을 뜯어보며 자신과 닮은 구석이 있는지 찾아보거나 누군가 던지는 말에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힌트를 얻으려고 했다. 모두 헛수고였지만.
그러던 어느 날 펄롱이 약속한 시간보다 훨씬 이르게 수녀원으로 배달을 갔는데 이상한 장면을 목격한다. 수녀원은 직업 여학교를 운영하는 한편 세탁소도 겸업했는데, 마을에는 이곳에 대한 뒷소문이 떠돌았다. 직업학교에 있는 여자들은 학생이 아니라 타락한 여자들이어서 교화를 받는 중이며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더러운 세탁물에서 얼룩을 씻어내며 속죄한다고. 또 가난한 집의 결혼 안 한 여자가 아기를 낳으면 가족이 미혼모를 수녀원 안의 모자보호소에 보내 숨기고 사생아로 태어난 아기는 부유한 미국인에게 입양시키거나 오스트레일리아로 보내는 과정에서 수녀들이 상당한 돈을 챙긴다고. 펄롱은 믿을 수 없는 뒷소문이라고만 여겼던 장면들을 직접 목격한다.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아이의 말을 무시한 채, 처참한 몰골을 하고 석탄 광에 갇힌 소녀를 뒤로 한 채, 펄롱은 집으로 돌아오던 중 길을 잃는다.
"이 길로 가면 어디가 나오는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
"이 길?" 노인은 낫으로 땅을 짚고 손잡이에 기댄 채 펄롱을 빤히 보았다. "이 길로 어디든 자네가 원하는 데로 갈 수 있다네."
<이처럼 사소한 것들> p.54
펄롱은 수도원으로 향한다. 석탄 광 안에 그 소녀가 여전히 갇혀 있었다. 처참한 모습으로 자신의 아기가 어디 있는지, 아기가 굶주리고 있는 건 아닌지부터 걱정하던 소녀가. 펄롱은 소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기로 결심한다. 자신이 구하고 있는 게 어머니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떠올린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 등장하는 막달레나 세탁소는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고 아일랜드 정부에서 지원한 시설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타락한 여성'들을 수용한다는 명분 아래 성매매 여성, 혼외 임신을 한 여성, 고아 등 '성 윤리에 어긋난 짓을 저지른 여성'들을 감금시키고 강제 노역을 하게 했다.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받기는 커녕 목숨을 잃은 이도 많았으며 제대로 된 삶을 누리지 못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세탁소의 실상에 대해 짐작하면서도 모른체하지만, 위태로운 갈림길 위에 서서 오래도록 고민하던 펄롱은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를 길을 선택한다. 어둠이 내려앉은 스산한 마을에 처연하고 흐릿하지만 불이 하나 켜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