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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k Child님의 서재
  • HHhH
  • 로랑 비네
  • 12,420원 (10%690)
  • 2016-11-25
  • : 680


프랑스 작가 "로랑 비네(Laurent Binet)"가 2010년에 발표한 첫 장편소설 "HHhH"입니다. 이 작품은 프랑스 최고 문학상인 '콩쿠르 최우수 신인상(Prix Goncourt du Premier Roman)'을 작가에게 안겨주었고 뉴욕 타임즈가 선정한 '올해의 주목할 만한 도서(2012년)', 일본 '서점대상 번역서 부문 1위(2014년)' 등의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1938년 독일은 체코를 합병합니다. 그리고 "히틀러"는 독일 3제국 보호령 체코 총독으로 SS(나치스 친위대)의 2인자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를 임명합니다. 체코 망명정부의 베네시 대통령과 영국은 체코에 "요제프 가브치크", "얀 쿠비시" 두 청년을 포함한 낙하산 병 10여명을 침투시켜 "하이드리히"를 암살하려는 계획, 일명 '유인원 작전(Operation Anthropoid)'을 기획합니다. 1942년 5월 27일 "하이드리히"가 탄 메르세데스 앞에 매복하고 있던 "가브치크"와 "쿠비시"가 나타나 유인원 작전을 실행합니다.

 

그대들은 그 어느 국가도 두 명에게 단독으로 맡긴 적이 없는 최대 임무에 투입되어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계속 훈련을 받는다. 그대들은 정의와 복수를 믿고 있으며 용기와 의지력과 재능이 있다. 그대들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 마음속에서 커지다 점차 통제가 불가능해진 무엇인가에 사로잡힌 그대들이지만 꿋꿋하게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다. 그대들은 평범한 인간이다. 한 남자.

그대들의 이름은 요제프 가브치크와 얀 쿠비시. 이제 그대들은 역사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히믈러의 두뇌는 하이드리히라 불린다(Himmlers Hirn heißt Heydrich)"에서 제목을 따온 "HHhH"는 SS에서 수장인 "하인리히 히믈러" 다음의 서열 2위 권력자이자 그의 오른팔, 제국보안부 수장, 나치스 보안방첩부 책임자, 게슈타포 책임자 그리고 '금발의 짐승', '독일 3제국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로 불리며 유대인 대학살의 주도자였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암살 작전인 '유인원 작전'을 다룬 역사소설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역사소설과는 달리, 검증된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생각 그리고 집필과정이 섞여있는 상당히 독특한 형식의 역사소설입니다.

'유인원 작전'은 "새벽의 7인 (Operation Daybreak)" 등 여러 편의 영화와 소설 속에 등장했던 소재이지만, 이 작품 "HHhH"에서는 철저히 확인된 사실들 위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대사들 역시도 확인된 대사들 위주로 쓰였습니다.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이라도 확인이 되지 않았다면 작가 "로랑 비네"는 쓰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과감히 생략하며, 자신이 이 소설을 쓰는 이유와 목적을 확고히 유지합니다. 거기다 작가는 자신의 생각과 자료 조사 과정과 집필 과정을 섞어서 소설을 257개의 챕터로 쪼개놓습니다. 처음 읽으면 이런 독특한 구성에 적응이 힘들지만 곧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이 책 속으로 빨려들어 갑니다. 그리고 '유인원 작전'이 시작되는 후반부부터 작가는 픽션의 요소들을 첨가해서 클라이맥스로 독자들을 싣고 질주합니다.

 

하이드리히가 자신이 만든 가장 악랄한 부대, 아인자츠그루펜을 처음 사용한 곳이 폴란드다. 나치스 친위대 보안방첩부와 게슈타포 대원들로 이루어진 이들 SS 특별부대는 독일 국방군이 점령한 지역에서 '인간 청소' 임무를 담당한다. 팀마다 작은 소책자를 받는다. 얇디얇은 종이로 된 소책자에는 필요한 모든 정보가 깨알 같은 글씨로 적혀있다. 그 정보란 점령된 지역에서 제거해야 할 모든 사람의 목록이다.

 

이렇게 사실과 가상의 네러티브, 작가의 생각이 결합된 소설을 '인프라 소설'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이런 형식으로 소설을 쓴 이유는 책 속에서 작가의 목소리로 확고히 드러납니다. "역사는 여러 각도로 다시 읽을 수는 있지만 다시 쓸 수는 없다.". 물론 작가도 픽션의 요소에 굴복하고 싶은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책 곳곳에는 작가의 역사소설에 대한 고집과 집념 그리고 고민이 생생하게 표현됩니다.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집착에 가까운 '유인원 작전'에 대한 관심과 애정(?) 부분을 오가며 책을 읽다 보면, 담담하고 건조한 문체와 격렬하고 지극히 사적인 감정이 묻어있는 문체 사이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변화를 책을 읽는 사람의 감정도 같이 변하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정말이지 독특하고 강렬합니다.

 

"유럽의 유대인들에게는 전부 사형선고가 내려졌습니다."

아인자츠그루펜이 이미 유대인 100만 명 이상을 처형했으니 참석자 중 하이드리히의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로랑 비네"가 이 작품 "HHhH"를 쓴 이유는 유인원 작전의 두 영웅 "가브치크"와 "쿠비시"를 위해서입니다. 물론 악마와도 같지만 캐릭터적으로 매력있고 많은 자료들이 있는 홀로코스트의 주도자 "하이드리히"의 분량이 더 많지만 소설의 주인공은 분명히 두 명의 영웅입니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프라하에 침투한 다른 낙하산 병들, 이들이 작전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도움을 주었던 많은 체코 시민들 그리고 유인원 작전의 보복으로 독일군에게 몰살당한 리디체 마을의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이 작품 "HHhH"가 쓰여졌습니다. 처절했던 성당 지하실에서의 마지막 저항이 끝나고,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 사실이 주는 강렬한 감동이 밀려옵니다. 이것은 분명 작가 "로랑 비네"의 오랜 노력과 고민의 산물이 아닐까 합니다.

 

역사적 사실을 쉽게 풀어내기 위해 등장인물을 만드는 것은 증거를 위조하는 것과 같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쩌면 이 주제에 대해 같이 토론해 본 내 배다른 형이 말한 비유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유죄 증거가 바닥에 널려 있는 범죄 현장에 가짜 증거를 들이미는 것..."


사실 저는 역사적 이야기를 영화나 소설로 옮길 때 어디까지 각색해야 하는가에 대해 별다른 고민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많이 관대한 편이라 수많은 작가들 그들만의 독특한 목소리만큼의 이야기들이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확실히 이렇게 역사적 사실들, 그러니까 철저하게 고증된 실화만이 가지는 힘과 감동은 더욱 강렬한 것 같습니다. 금발의 짐승이라고 불렸던 "하이드리히"의 암살 작전을 지금이라도 알고 싶은 분들이나, 실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고 싶은 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절대로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HHhH"는 그만큼 강렬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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