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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k Child님의 서재
  • 철로 된 강물처럼
  • 윌리엄 켄트 크루거
  • 13,500원 (10%750)
  • 2016-04-30
  • : 445


2014년 11월 14일 범죄소설 장르에서 가장 유명한 행사 중 하나인 '바우처콘' 행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앤서니' 상 수상작들이 발표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역사상 최초로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권위 있는 범죄문학상들인 '에드거', '배리', '매커비티', '앤서니' 상의 최우수 작품상을 모두 석권한 작품이 탄생했습니다. 이 4개의 상의 수상 이외에도 '딜리스' 상 등 몇 개의 상들을 더 수상한 그 작품은 바로 베스트셀러 작가 "윌리엄 켄트 크루거(William Kent Krueger)"의 "철로 된 강물처럼(Ordinary Grace)"입니다.


1961년 여름, 열세 살 소년 "프랭크 드럼"은 같은 동네에 사는 동년배 소년의 죽음을 마주하게 됩니다. 약간의 장애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조롱과 놀림을 당하던 외톨이 소년의 죽음은 "프랭크 드럼"이 그해에 직간접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죽음의 시작이 됩니다. 사고사, 자연사, 자살 그리고 살인... 무더운 여름의 이 죽음들은 열세 살 소년의 일상을 뒤흔들고, 소년의 삶은 그 이전과는 다르게 변해버립니다.


노래를 들으니 바비가 죽은 것이 바비를 위해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귀여운 소년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게 됐기 때문이었다. 그 잔인한 조롱과 모욕을 더 이상 견뎌낼 필요가 없게 됐기 때문이었다. 자기가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될지, 나이 든 부모님이 자기를 보호해주고 보살펴줄 수 없게 될 때 자신이 어떻게 될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노래를 듣고 있자니 하나님이 최고의 선의로 바비 콜을 데려가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네소타 주 뉴 브레멘 외곽의 선로 위에서 "바비 콜"라는 소년이 열차에 치여 죽습니다. 지역 목사의 아들인 "프랭크 드럼"은 자신과 동갑이었던 이 소년의 죽음으로 인해서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신적 장애를 안고 있던 "바비 콜"이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 열차가 오는 소리를 못 들어서 사고가 났다고 생각하지만 몇몇 사람은 소년이 장애가 있지만 귀는 이상이 없다며 죽음에 의혹을 가집니다. 떠도는 의혹들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프랭크"는 자신도 동생과 함께 자주 놀러가던_부모님이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하던_사고 장소인 철로에 가고, 그곳에서 죽은 남자의 몸을 뒤지고 있던 원주민 노인을 목격합니다. 죽음에 대한 호기심으로 원주민과 시체가 있는 곳으로 내려간 "프랭크"와 동생 "제이크"는 원주민 노인에게 이 떠돌이가 갑자기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경찰에 시체를 발견한 사실을 신고한 "프랭크"과 "제이크"는 원주민 노인에 대한 이야기는 함구하고 얼마 뒤, 뉴 브레멘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상실이 확실해지면 그것은 손에 쥔 돌멩이와 같다. 무게가 있고 크기가 있고 질감이 있다. 단단하고, 평가와 처리가 가능하다. 그것을 들어 자신을 칠 수도 있고 그냥 던져버릴 수도 있다.


중년의 남자가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게 너무나 큰 변화를 가져왔던 1961년 여름에 일어난 일들을 회상하는 구성으로 된 "철로 된 강물처럼"은 죽음과 비극, 속죄, 구원, 용서 등을 통해 무너진 삶을 견디고 일어나서 다시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입니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소년에서 어른으로 가는 과정에서 힘든 성장통을 겪는다는, 별로 새롭지 않아 보이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제가 읽어본 바로는 이 작품 "철로 된 강물처럼"은 장르를 떠나서 너무나도 훌륭한 문학작품입니다.

마을에서 존경받는 목사인 아버지, 아름답고 음악적 재능이 풍부한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은 자상한 누나, 조숙하고 남들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동생과 나름 행복하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소년 "프랭크 드럼"에게 열세 살이 되던 1961년 여름은 잊지 못할 여름이 됩니다. 목사인 아버지 때문에 죽음을 자주 접해봤던 "프랭크"에게 동년배 동네 소년의 죽음과 자신이 발견한 떠돌이 남자의 시체는 죽음이라는 사실에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그리고 장애로 인해 온갖 조롱과 놀림을 받던 소년과 연고지도 없는 부랑자같은 떠돌이 남자의 외로운 죽음은 어쩌면 하나님의 작은 축복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그러나 죽음이 "프랭크"와 그의 가족에가 찾아 온 순간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 되어버리고 평범한 일상이 완전히 무너지게 됩니다. 자신에겐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비극으로 느끼게 되는 슬픔과 좌절, 분노는 열세 살 소년에게 버겁기만 하고, 행복했던 자신의 가족이 그대로 무너져 버릴 것 같다는 불안감에 잠식되어 갑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어린 자신이 몰랐던 어른들의 세계를 알아가며 세상을 알게되고 어쨌든 삶이 계속 이어진다는 이치를 배워가게 됩니다. 그렇다고 가슴에 뚫린 구멍이 영원히 메꿔지지는 않겠지만.


아버지는 말을 더듬는 작은아들과 불량 청소년으로 자라고 있는 큰아들, 구순구개열을 앓고 있고 밤에 어딘지는 하나님만 아시는 곳에 갔다가 몰래 집으로 숨어드는 딸, 그리고 남편의 직업을 못마땅해하는 아내로 이루어진 집안의 가장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가 자기 자신이나 우리 가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마도 바비 콜의 부모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모리스 엥달이라는 개자식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들을 대신하여 기도하고 있을 것이었다. 하나님의 잔인한 은총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을 것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상에 갑자기 찾아오는 비극 때문에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는 이야기라고 했지만 사실 이 작품 "철로 된 강물처럼"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원제에 나오는 단어 "Ordinary"와는 다르게 일반적인 시선에서 보면 어떤 식으로든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눈이 멀었거나, 귀가 안 들리거나, 말을 더듬는 등의 신체적 장애, 그리고 편견과 피부색으로 재단되어버린 사람들, 남들과는 다른 정신적인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거나 전쟁 등의 상처로 눈에 보이지 않는 고통으로 힘겨워하는 사람들 등. 어쩌면 우리 대부분이 평범, 정상이라는 가면을 쓰고 자신의 상처와 장애를 숨기고 살며 다른 사람들의 작은 단점이나 장애로 쉽게 편견적인 시각을 가지게 된다는 작가의 생각이 반영된 듯 합니다.


우리는 널리 알려져 있는 것들과 한순간 보고 지나친 것들에 관해 뒤죽박죽 엉켜 있는 기억들을 가지고 재구성한다. 우리의 역사는 내 아버지의 몸처럼 이쑤시개로 만든 구조물이다. 그러므로 내가 뉴 브레멘에서의 마지막 여름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빛 속에 서 있는 것들과 내가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있어서 상상으로 그려보는 것들로 이루어진 구조물이다.


사실 이 작품 "철로 된 강물처럼"이 '에드거' 상 후보에 오르고, 작품상을 수상했을때 그 동안 작가 "윌리엄 켄트 크루거"를 철저히 외면했던 '에드거' 심사위원들의 보상판정이 아닐까하는 의심의 눈초리가 꽤 있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의 줄거리가 딱 '에드거' 노땅들의 취향에 맞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그 후로 각종 작품상들을 휩쓸면서 이 작품의 진정한 힘이 인정받기 시작합니다. "윌리엄 켄트 크루거"는 그동안 원주민과 백인 혼혈인 전직 형사 "Cork O'Connor" 시리즈로 인기를 모으던 작가였는데 두 번째 스탠드언론인 이 작품으로 자신의 커리어 정점을 찍어버렸습니다. 철로에서 죽은 장애소년, 미심쩍어 보이는 자연사, 이방인, 사라진 소녀 등 초반부터 흔한 클리셰들이 계속 등장할 때는 저도 살짝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다 읽고 나니 이건 걸작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나도 교묘하고 자연스럽게 의혹들을 곳곳에 심어놓으며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아름다운 문장을 책 곳곳에 뿌려놓은 작가의 실력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거기다 얼마든지 가슴 아프고 절절하게 쓸 수 있는 이야기들을 감정의 과잉 없이 펼쳐내서 오히려 너무나 쉽게 감정이입이 되어버렸습니다. 실제로 비극적 전개가 될 것 같은 순간 몇 번이나 책을 덮고 쉼 호흡을 하고 읽었습니다.


"내가 철도 선로를 왜 좋아하는지 아니? 항상 저기 있지만 또 항상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지."

"강물처럼요." 제이크가 말했다.

나는 제이크가 말을 해서, 그것도 더듬지 않고 말을 해서 깜짝 놀랐다. 낯선 사람과 있을 땐 지독히도 말을 더듬는 아이인데. 원주민은 내 동생을 보면서 제이크가 위대한 지혜를 말하기라도 한 것처럼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철로 된 강물처럼." 그가 말했다. "똑똑하구나, 얘야, 정말 똑똑해."


이 작품 "철로 된 강물처럼"은 원제에서도 알수 있듯이 종교적 색채도 띄고 있고, 소재자체도 상당히 미국적인 작품입니다. 하지만 너무나 보편적이고 쉽게 공감이 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국내 제목이 "평범한 은총"이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란 점이 살짝 아쉽지만 정말 좋은 소설입니다. 사실 저는 이미 올해 이 작품을 뛰어넘을 소설은 없을 거라는 확신까지 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적 구분을 떠나서 문학작품 그 자체로도 너무나 훌륭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시간이 지날 수 록 더욱 더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높아질거라고 확신합니다. 이런 단어 쉽게 쓰지 않는데 이 작품 "철로 된 강물처럼"은 걸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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