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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note님의 서재
  • 전장에 두고 온 학생증
  • 한희나
  • 18,900원 (10%1,050)
  • 2024-05-17
  • : 200

전장에 두고 온 학생증 한희나 지식과감성 


1950년 6.25 전쟁에 참여했던, 94세 한 희나님은 함경북도 출생으로 대학교 1학년에 전쟁이 발발해 자유주의 국가에서 학업을 이어가겠다는 염원으로 국군에 자원입대하였다. 처참하고 비참했던 전쟁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고 그는 생각한다. 전쟁은 있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전쟁의 참상을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되고자 이 책을 썼다. ​


"90이 다 되어 가던 어느 날, 사랑스럽고 예쁜 손녀가 30세 때부터 조금씩 기록해 왔던 나의 이야기를 읽었다. 할아버지가 숱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것이 기적이고 천운이라며 놀라워했다. 손녀의 권유로 용기를 내어 내가 경험한 전쟁의 역사를 기록한다."


​손녀에게 할아버지는 인자하신 분이다. 좀처럼 화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할 때는 주변에서 불러도 모를 정도로 집중력이 좋은 할아버지에게 무한한 애정을 받으며 자랐다. 취업 준비가 끝나고 직장에 안착하자 할아버지는 30대 때부터 정리해온 기록과 자료를 꺼내 놓으셨다. 


몇 년간 함께 작업했다. 책을 읽어보면 그 디테일에 놀랄 정도로 전시의 남북한 군대 체제, 용어, 당시에 사용하던 일상 표현, 도구들, 지역 방언, 전쟁 지역과 각종 무기 등 자료를 찾아 조사하고 글에 녹여낸 정성이 대단하다. 


손녀의 손으로 이 책이 엮어졌다. 전쟁이 발발했을 때 저자는 스무 살, 저 사진 속 청년이었을 것이다. 94세인 지금도 스무 살, 전쟁의 상흔이 깊은 어린 청년이 살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촘촘한 저자의 기억이 감탄스러웠는데 이는 트라우마적 사건이었을 것이다. 잊으려고 하면 더 폐부 깊숙히 파고 들어오는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이렇게 평생에 걸쳐 기록해 온 저자의 웅숭깊은 마음이 느껴졌다. 


전쟁은 우리의 일상이 송두리째 뿌리뽑히는 무서운 사건이다. 작금 대한민국은 흉흉하다. 평화가 최고의 방어다. 그 쉬운 것을 알지 못하니 평화가 위험 수위다. 


1950년 6월 말, 저자는 대학에 입학한 후 처음 치르는 기말고사를 준비 중이었다. 흥남 공대. 북한은 주력 산업이 공업이었으므로 만약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저자의 미래는 무탈하고 평화롭고 행복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전쟁 발발로 인민군이 되기 싫어 숨어지내는 가슴 졸이는 시간들이 서술되어 있다. 가족을 떠나 학생증을 가슴에 품고 자유의 땅 남쪽으로 향하는 우여 곡절이 기록되어 있다. 


대한민국 국군이 되어 북쪽으로 진격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국군으로 경험하는 저자의 숱한 위기 상황들이 전개되었다. 


1950년 12월 중순 흥남 부두에 도착한 피난민들이 우왕좌왕하다가 UN군의 배려로 자유를 향해 승선한 숫자가 10만, 길이 막혀 남겨진 피난민도 그만한 숫자였다고 한다. 저자는 12월 18일 경 가까스로 군 수송선을 타고 강원도 동해에 도착, 묵호초등학교에서 본격적인 군사훈련을 받았다. 연고가 없었으므로 받은 서러움들, 추위와 배고픔과 수면 부족에 고통스러웠던 이야기들, 수색대가 되어 경험한 위기 상황 들, 순간순간 일촉즉발이었을 그의 전쟁 경험들이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소제목만 봐도 긴장감이 느껴진다. 저자는 생포한 어린 인민군 병사를 살려주기도 하고 자신이 인민군에게 잡혀 그들과 생활을 하다 탈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쟁포로로 부산 거제리 포로 수용소로 옮겨지고 그곳에서의 긴장감 넘치는 역사적 사실들을 목격할 수 있어서 놀라웠다. 저자는 국군이었음에도 반공포로가 되었고 판문점에서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되기 까지의 아슬아슬하고 숨막히는 과정을 경험했다. 


1953년 7월 27일, 남북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같은 민족끼리 총칼을 겨누던, 피비린내 나는 3년 남짓 전쟁'이 중지되었다. 저자는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당장에 강제송환될 수도 있다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억압적인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살수 없어 가족까지 걱정시키면 남쪽으로 내려와 군인이 된 자신이 원치 않게 인민군에게 붙잡혀 다시 북으로 끌려가고 그토록 기피하던 인민군 신분이 되었다. 목숨을 걸고 탈출을 감행했고 UN군의 포로가 되어 국군으로 인정도 못받았다. 


저자가 다시 간절히 소망하던 대한민국 땅을 다시 밟을 수 있게 된 것은 1954년 1월 23일 아침이었다.


"석방되어 자유의 다리 위를 달려 나오는 7,500여 명의 외침이 지축을 뒤흔들고 만세 소리가 사방 천지에 울려 퍼졌다."


"대한민국 만세! 자유 만세!"


"나는 그토록 바라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비로소 진정한 자유의 몸이 되었다."


우리는 지금 평화 속에 있다. 아침에 눈 떠 하루를 시작하고 평화롭게 하루를 마감하고 잠자리에 든다. 이 평화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수많은 영화들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보았다. 세계 어딘가에는 여전히 전쟁의 참상을 현재진행형으로 경험하는 숱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한 번 전쟁을 경험한 이들은 결코 전쟁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며 늘 그 기억을 현재형으로 경험할 것이다.


전쟁 없는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전쟁은 심장이 없고 사랑이 없고 온기가 없고 생명이 없다. 고통과 절망과 극도의 허기와 사랑의 부재가 있다. 저자가 경험한 전쟁 역사는 저자가 사라지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이 경험한 고통을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이 책의 진정한 존재 이유겠다. 


이 리뷰는 지식과감성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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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말, 우리는 군용 트럭에 탈 수 있는 인원보다 많은 대원이 모두 트럭에 타야 했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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