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수많은 지명과 인명들이 휙휙 나왔다가 휙휙 사라지는 책이다. 짧은 책이라 뒤에 색인이나 용어 안내도 잘 없어서 일견 완전 입문자용으로는 부적절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시대상이나 복잡한 경제, 사회, 문화적 설명을 제거하고 지도자들을 중심에 두고 쓰인 책이라 읽기는 수월하다. 특히 모스크바 대공국이 확립된 이후에 대한 서술부터 그 경향이 굳어진다. 여러 지도자들의 목표, 성향, 성격, 목표의 달성 여부 등을 비교하며 읽는 것이 흥미롭다. 문장의 짜임새와 앞뒤 사건의 연결도 너무 자세한 부분은 생략하면서도 잘 구성해 놓았다.
그런데 책 소개와 목차를 통해 기대했던 것이 다 충족되지는 못한 것 같다. 그 하나가 ‘관제 민족주의’였다. 처음에 목차에서 이 단어를 보았을 때는 19세기 러시아에서 서구와 어딘가 다른 위로부터의 민족주의 확산이 일어난 양상을 설명할 줄로 알았다. 물론 서구에 대비되는 러시아를 상정하여 러시아의 고유 가치를 지켜내려는 엘리트들의 ‘민족체’ 상상 노력이 설명된 것은 맞지만, 저자가 그렇게 강조했던 것처럼 드넓은 러시아의 겹겹이 쌓인 다층적인 정체성이 과연 전제군주정의 ‘위로부터의 민족주의’에 의하여 러시아라는 국가로 잘 봉합되었는지, 즉 민중 사이에서 민족의식의 실제 양상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것 같다.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본과 같이 군주제와 민족주의가 탄탄히 결합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듣고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Official Nationality’를 관제 민족‘주의’로 번역한 것이 실수였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저 엘리트들이 19세기의 내셔널리즘과 보조를 맞춘 것으로서의 관제 민족주의를 말하기에는 일렀던 것이 아닐까. 진정한 의미로서의 ‘관제 민족주의’를 기대하려면 소련 시절까지 기다려야 하지 않았을까? 과연 관제 민족주의가 한 챕터의 키워드가 될 정도로 중요한 말인지는 확신할 수 없겠다.
이 밖에도 몇몇 아쉬운 측면이 있었다. 러시아 제국을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였던 전제군주제에 대한 설명이 그랬다. 전제군주제를 어떤 측면에서는 서유럽 절대왕정처럼 개혁이라는 이해하려고 했다가, 한편으로는 ‘아시아적 전제’라는, 타자화하는 방식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등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일단 아시아적 전제라는 말 자체도 대체 어떤 아시아에서 연원한 무엇을 지시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기도 하고, 서유럽과 다른 무언가를 지칭하기 위한 편의적인 단어라는 것이 문제다. 또 스탈린을 서술하면서 등장한, 우크라이나 대기근이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에 보복하기 위해 고의로 저지른 것이라는 주장도 확실히 검증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스탈린주의에 전체주의라는 기존 도식‘만’ 수동적으로 적용하는 듯한 모습도 조금 보이는 것 같았다.
마지막 부분의, 러시아는 그 누구보다도 스스로 강하게 유럽이라고 느끼나, 서유럽 국가들에 의해 점점 ‘유럽’으로부터 밀려나고 있다는 이야기에서 많은 공감을 느꼈다. ‘유럽’이라는 이름을 표방하고 서로 끈끈이 뭉치려 하고 있는 서유럽의 국가들이 러시아를 강하게 배제하고 있다고 해서 러시아인들이 유럽의 상속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이 아니다. 유럽을 그 중심과 주변부가 있는 특정한 지역 단위로서가 아닌, 일종의 기호로서 보아야 할 시점이 오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이 언급한 바대로, 영국에는 영국의 유럽이, 독일에는 독일의 유럽이, 러시아에는 러시아의 유럽이 있을 것이다.
훌륭한 국가사는, 그 국가를 역사가 흘러가는 직선의 수로처럼 보면서 역사를 써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 속의 사람들이 국가라는 역사적 단위를 얼마나, 어떻게 스스로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를 고찰하는 자기인식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자칫 국가사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지도자 중심의 서술을 택하고 있으면서도, 꽤 괜찮은 자기인식사를 서술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슬라브 세계에서 어떻게 루스가 태어났고, 루스 세계에서 어떻게 모스크바, 그리고 러시아가 태어났는지를, 즉 러시아라는 개념의 역사를 고찰하고 있고, 그 개념이 지도자들에게 어떻게 다루어졌는지, 그들과 어떻게 친해지거나 다퉈 왔는지를 다루고 있다. 푸틴 시대의 러시아 민족주의도 푸틴과 러시아 개념의 협력, 길항 관계 속에서 다뤄 볼 때 흥미로운 이해를 낳을 수 있지 않을까? 마치 원형에서 벗어난 교회를 바로잡겠다던 17세기의 니콘처럼, 오랜 소련 시절 동안 다른 형태로 변형되어 존재하고 있었던 러시아를 화려하게 부활시키려는 푸틴의 투쟁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