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노래, 그리고 청각을 가진 식물
식물은 귀를 갖지는 않았지만 땅은 소리를 잘 전달한다. 철로에 귀를 대어 기차가 오는 걸 알아낼 수 있다.옛날 서부영화에서,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땅에다 귀를 대고 멀리서 말이 달려오는 소리를 감지한다.식물이 듣는다는 것은 어쩌면 이런 진동을 촉각으로 감지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촉각은 바로 진동을 감지하는 능력이며 식물은 인간처럼 청각이 귀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신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식물은 온몸으로 이 파동을 감지하며 소리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Seeing is believing'속담처럼 본다는 것은 사물 세계에 대한 객관성을 높이는 것이었고 시각은 사물의 존재성을 가장 확실히 증명하는 것이었다. 이에 비해 후각, 청각, 촉각, 미각 등은 훨씬 더 개인주의적이고 친밀한 사적 영역이다.보는 것의 확신성에서 나아가 촉각에 근거한, 식물 청각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는 것은 식물 이해 영역을 확장시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들뢰즈의 논의처럼 우리 실존이 가진 감응능력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 것이다.
그가 소리 세계가 가진 고유성을 해명했던 것처럼 우리는 냄새 세계, 맛 세계, 그리고 나아가 촉감 세계에 대해 보다 깊이 사유해야만 한다. 왜냐면 우리 실존을 인식하기도 전에 벌써 거대 자본이 그런 감각을 통째로 지배하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