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립 얀시의 한밤을 걷는 기도는 창조주이시고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는 고통가운데 우리를 외로이 홀로 두시는 것이 아니라, 시대 속에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문제를 보는 통찰력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힌트를 숨겨 두시셨고 지금의 문제는 이전 역사의 그림자처럼 하나님의 일하심을 미리 엿보게 하시는 예고편과 같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팬데믹의 긴 터널 속에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다가도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슬픔 생각에 젖어 있었다. 위험이 잡힌 듯 보이지만 또 다른 위협으로 마음의 불안은 커져만 간다. 만 일상으로의 복귀를 외치며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제자리걸음인 것만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연약한 믿음에서 끊임없이 찾아오는 불안에 대한 공포를 불면증에 관한 15챕터의 기도문을 통해 다음과 같은 위로를 얻게 한다.
"주님이 제게 허락하신 이 불면증이 불안과 불편의 원천이 아니라
제가 당신의 존전에서 잠들기를 원하지 않으신다는 증표가 되게 하소서(155)."
책을 읽는 동안 존 던과 필립 얀시와 셋이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코로나19로 인한 혼돈의 시대 속에서, 질병과 고통에 관하여 그리고 삶과 죽음에 관하여 매일 밤, 차를 마시며 가르침과 토론을 나누는 기분이었다. 저자의 권고대로 본서는 30일간 한 편식 보며 묵상해야 한다. 묵상과 기도를 통해 매일 매일 영혼이 묻은 때가 씻겨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3,4 챕터의 내용을 보면,
"제 영혼은 왜 몸처럼 예민하지 못합니까? 왜 유혹이 다가오면 영혼의 맥박이 빨라지지 않고,
눈물이 나와 영적 질병을 경고하지 않습니까?(34)"
"제 몸의 감각이 이 세상 즐거움에 둔해지게 하심으로써 당신을 인식하는 제 영적 감각이 예리해지게 하셨습니다.
제게서 저를 벗겨 내시고 주님을 입혀 주십니다(47)."
고통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와 통찰력의 깊이에 빠지다 보면 다음 내용의 궁금함을 참지 못해 단숨에 읽기 원하는 유혹이 솟아오른다. 단숨에 읽기 시작하며 글의 매우 매력적이기에 2시간내외로 읽어 갈 수 있는 분량이다. 솔직히 궁금증에 유혹을 견디지 못해 책을 속독한 후 매일 한 챕터씩 보려고 노력했었다. 매일 경건과 거룩한 시간을 갖듯이 말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본서의 내용은
"우리가 불행을 마신다면 행복은 겨우 맛만 볼 뿐이다. 불행을 수확한다면 행복은 줍는 수준이다.
불행이 긴 여행이라면 행복은 가벼운 산책이다. 불행은 부정할 수 없고 검증 가능한 반면, 행복은 잡히지 않고 파악하기 어렵다. 불행은 누구나 불행으로 느끼는 반면, 행복은 사람마다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140)."
불행 앞에서 적극적이고 행복 앞에서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나의 모습 드러나는 문장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팬데믹 속에 저 문장의 불행과 행복을 바꿔보며 현재의 상황 속에서도 감사와 행복은 느낄만한 것들이 많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 날의 예배를 그리워 하게 될 날이 나의 생애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당연하게 드려졌던 시간들 당연하게 맞이했던 날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지금이다. 그 날이지 못한 답답함을 넘어 슬픔과 고통이 찾아와 주저앉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말씀을 대하고 전할 때 희망과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던 내가 코로나19 앞에 내면에 비집고 들어오는 부정적인 마음으로 어떤 말도 할수 없고 함구 하며 슬픔에 젖어 있는 내게 본서를 읽으며 400년전 존 던과 필립 얀시로 시대를 이 길 새로운 힘을 수혈 받는 느낌이다. 생각의 전환, 태도의 전환을 경험한 본서는 질병의 문제를 넘어 어디에도 내놓을 수 없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함을 느끼며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과 본서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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