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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정님의 서재
  • 활자 잔혹극
  • 루스 렌들
  • 15,120원 (10%840)
  • 2024-06-18
  • : 7,006
#활자잔혹극 #루스렌들 #이동윤 옮김 #북스피어 #추리소설 #독서기록 #도서관대출

작년에 출간한다는 광고를 보고 메모해 놓았던 책.
보통 추리소설은, 사건이 일어나고, 온갖 증거들이 슬쩍슬쩍 모습을 보이고, 형사나 탐정이나 일반인이든 사건해결자가 모든 증거를 조합해서 범인을 추론해내는 형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책은 첫 페이지, 첫 문장에서 범인이 특정된다.
‘유니스 파치먼이 커버데일 일가를 살해한 까닭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이다. ‘p7
소설은 계속 유니스의 범행 동기도, 사전 계획도, 범행으로 인한 이득도 없었다고 이어서 서술한다. 왜? 유니스는 어떤 사람이길래?라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소설을 읽는 내내,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더 리더‘가 떠올랐는데, 장정일 작가의 후기에도 그 책이 언급된다. 아우슈비츠의 여간수였던 한나가 문맹이라는 사실이 들통날까봐 함구하고 18년 동안 모든 죄를 덮어쓰고 투옥되었던.

루스 렌들은 문맹은 단지 글을 읽지 못하고 쓰지 못하는 것에 끝나지 않고, 소통의 부재, 무감각, 무감정으로 이어진다고 보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납득이 가지만 과연 그럴까? 주인공 유니스는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을 남들이 알까 두려워 타인들과의 관계 맺음을 아예 차단한다. 적대적으로 소극적인 그녀는, 열린 마음이었던 주인의 호의(운전 면허를 따게 해주려 하고, 텔레비젼이 놓여진 안락한 방을 제공해 준)를 거절하고 은둔한다. 게다가 그녀가 유일하게 가까이 하게된 사람은...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문맹자가 많았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문맹자가 많았기 때문일까 사람들과의 소통이 닫혀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금은 글을 읽을 수는 있지만 같은 글도 다들 얼마나 다르게 읽고 이해하는지. 결국 글을 읽을 수 있으면 많은 혜택을 보기도 하지만 (책읽기를 좋아하는 나는 몸은 집에 있지만, 머리 속으로는 시공간을 여행한다..) 글을 읽는다고 해서 절로 ‘소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소설 속의 자일즈가 그 예. (다행이도 나는 자일즈만큼은 아니네..)

보통 추리소설을 읽을 때  약자의 범인에게 그럴 수도 있지하고 감정이입이 되곤했는데,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도 있지..) 이토록 범인이 싫을 수 있는지..으.. 제목이 참. ‘A Judgement in Stone‘

루스 렌들이라는 이름은 처음 접했다. 매력있다. 다른 책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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