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책읽는 감자고로케
  • 크렘린의 마법사
  • 줄리아노 다 엠폴리
  • 15,120원 (10%840)
  • 2023-08-18
  • : 495

  <크렘린의 마법사>, 제목만 놓고 본다면 판타지 장르라고 착각할 법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추천사의 '흑마법 같은 책이다.'라는 평은 책이 더욱 그런 인상을 심어준다. 하지만 이 책은 러시아의 정계 이야기이다. 

 

  러시아에 대한 인상은 나와는 거리가 먼 나라, 정도였다. 2022년 이전의 러시아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2014년 올림픽이 개최되었던 장소라는 것, 각종 웹툰이나 유튜브 같은 컨텐츠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 탑승기를 보며 나도 언젠가 타보고 싶다, 라고 생각을 했다는 것, 지인의 여행기에서 물가가 싸고 우리나라 낡은 버스가 길거리에 많이 다닌다는 사실을 들은 것 정도였다. 그리고 2022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전쟁이 발발하고, 2023년 바그너 그룹 반란이 일어나며, 국제 뉴스에서 이름이 흘러나오는 빈도가 높아짐과 동시에 나의 관심 또한 좀 더 쏠렸다. 하지만 알아본 얕은 지식은 일어나는 비인도적인 행위에 분노하고, 일의 대략적인 귀추를 알아보기 위함이었고, 나는 여전히 러시아에 관련해서 무지하다고 볼 수 있었다.  

 

  생각하던 판타지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이 책은, 모스크바의 단 하룻밤의 이야기를 다룬다. 작가는 소설 내내 '크렘린의 마법사'라고 불린 푸틴의 정치 고문 바딤 바라노프의 입을 빌려 러시아 권력의 핵심부를 들춰낸다.

 

  책은 서술자, 즉 바딤의 모놀로그가 시작되기 전 이야기를 서술하던 주체를 자신의 집으로 부른 바딤이 서재에서 고백하듯 풀어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바라노프는 자신의 젊은 시절, 1990년대의 러시아에서의 삶, 푸틴의 정치적 삶에 얽히며 발생하고, 목격한 일들을 이야기하고,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권력에 대하여 고찰한다.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눈앞에 그 모습이 생생히 그려지는 것만 같은 인상을 받았다. 

 

  실제 사건과 인명을 소설에 그대로 사용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하는데, 사실 기존에 러시아 관련 지식에는 문외한이었던지라 푸틴이나, 비교적 최근 알게 된 프리고진이라는 이름 외에는 전부 생소한 이름으로 느껴졌다(그리고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면서도 느꼈던 바인데, 러시아 이름들은 대체로 너무 길고 어렵다...이름을 소화하는 데에 많은 의식이 필요함. 그리고 쭉 한번에 매끄럽게 읽히는 게 아니라 이름 부분에서 읽는 속도가 느려진다는 불편함이 존재함)

 

  사실을 기반으로 한, 잘 짜인 팩션이라고 볼 수 있기에 더욱 사실적이고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리고 더욱 아슬아슬하고 더 감춰진 이야기가 있을까 주의를 기울이면서 읽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작가의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바딤의 사생활만이 완전한 창작의 영역이고, 이 책을 원래 에세이 형식으로 출간하려고 했다고 한다. 

 

  소설 속에서 바라노프만이 창작 속 인물이라고 볼 수 있는데, 책 막바지의 해설 부분에서 옮긴이는 이렇게 말한다. 

 

'기나긴 모놀로그의 주인공 바딤 바라노프는 실존 인물 블라디슬라프 수르코프가 그 모델이다. (중략) 하지만 그 밖에 거의 모두가 실존 인물의 실명을 달고 등장함에도, 유독 주인공만 예외인 이유는 무얼까? 그의 시선을 통해서 그려지는 러시아의 실상과 인물들의 행적에 저자 자신의 가치 판단과 주관이 개입할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사실 만약 읽기 전 러시아의 정치에 대해 좀 더 공부하고 읽어보았다면 더 이해하기 쉬웠을지 궁금하다. 생소한 지명이나 인명, 단어들이 많아 검색의 힘을 빌려야 하는 순간들이 존재했고, 읽는 내내 방지턱이 여러 개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책은 분명히 끝까지 읽어볼만한 매력이 있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인터넷을 통해 책에서 다뤄진 일들을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고 다시 읽어보고 싶다. 

 

  현실 기반의 '팩션 소설'을 좋아하거나, 러시아의 권력체제와 그 뒤에 숨겨졌을만한 이야기에 흥미가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에 따라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