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같은 질문으로 끝난다.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주지 않고 독자가 계속 생각할 수 있도록 이끈다. 대략 10세기부터 19세기까지 서유럽 문명을 예술을 중심으로 톺아보며 문명이란 무엇인지를 그린다. 저자는 동양 문명은 자신이 알지 못하니 서양 문명을 살펴본다고 말했지만 서양 문명 중에서도 영국,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서유럽 문명에 치중한 것이 한계겠다. 애초에 텍스트로 기획된 내용이 아닌 다큐멘터리 대본이기 때문에 영상 매체에서 시각적, 청각적 이해를 돕는 다양한 작품들을 보거나 듣지 못하면 텍스트가 말하는 내용이 또렷하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점도 아쉬웠지만, 최대한 많은 도판을 수록하여 그 아쉬움을 최소화하였다. 유튜브에 찾아보니 다큐멘터리 전편이 올라와있어 궁금하면 시청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기간의 예술 작품은 르네상스 정도까지만 익숙하고 그 이후는 (사상을 제외하고) 굉장히 낯설게 느낀다는 걸 깨달았다. 나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사조라는 키워드만 알고 작품들은 모르는 것도 많았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동아시아에 사는 사람인데 서유럽 작품 좀 모른다고 문제될 게 있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옮긴이 후기에서 언급한 ‘중심과 주변의 불균형, 문화적 배경이라는 권력’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물론 난 연구자는 아니지만, 서구권의 영화나 드라마 등 현대 매체를 볼 때도 그걸 아느냐 모르느냐가 그 작품을 깊게 이해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르기도 한다는 걸 깨달은 적이 많아서 더 그런 것 같다. (대표적인 게 바로 성경 아닌가 싶다.) 읽는 내내 저자의 광범위한 식견에 감탄하기도 했지만, 문화적 배경의 차이나 성별 표현 등 모든 문장을 그대로 수용하긴 어려웠다. 그래서 옮긴이 후기에서 거론된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가 아주 궁금해졌다.
다시 책 속으로 돌아가보자면, 10장에서 계몽주의에 대해 이야기할 때 거론된 『백과전서』와 관련된 서술이 기억에 남는다.
“『백과전서』를 만든 이들은 결코 불순한 의도를 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권위주의적인 정부는 사전과 같은 책을 싫어했습니다. 그런 정부는 허위의식과 추상적인 개념에 의지해 존립되기에 언어가 정확하게 정의되어서는 곤란합니다. 『백과전서』는 두 차례나 발행 금지처분을 받았지만 마침내는 승리를 거두었고, 이 책을 낳은 우아한 살롱의 기품 있는 모임은 혁명 정치의 선봉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과학의 선봉이기도 했습니다. ”(p.341)
『제3제국사』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으면서 느꼈던 제3제국의 언어를 통해 생각을 폭을 좁히는 방식과 현재의 어떤 정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책 관련 예산을 줄이고, 연구 예산을 줄이는 정부 말이다. 또한 1장에서의 한 문장도 기억에 남는다.
“물론 문명에는 약간의 여가를 누릴 만큼 소소한 물질적 번영이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신뢰, 사회를 떠받치는 정의와 법률에 대한 확신, 스스로의 정신력에 대한 자신감입니다.”(p.27)
‘지금 우리에게는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신뢰, 사회를 떠받치는 정의와 법률에 대한 확신’이 있나?’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했듯, 불확실한 전망 속에서 우리는 확신을 품고 나아갈 수 있을까?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