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세계에서 경제력이 가장 큰 국가 중 하나다. 동시에 빈부격차가 큰 나라이기도 하다. 분명 부유한 국가인데, 빈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저자는 '이런 낭비와 풍요의 한가운데에 어떻게 이렇게 대책 없는 결핍이 있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어 이 문제를 파고들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우리'다. 이 문제를 직시하려면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풍요롭게 살고 있는 '우리'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다양한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미국의 상태를 꼬집고 있다.
분명 평균 생활수준은 향상됐다. 그러나 빈곤은 줄어들지 않았다. 저자는 '가난이 끈질기에 이어지는' 이유는 '그걸 바라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사회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비용을 치르도록 강요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빈곤은 단순히 충분한 돈이 없는 상태만이 아니'며, '충분한 선택지가 없고 그 때문에 이용당하는 상태'라고 정의했는데, 임대주택 시장의 경우를 보면 선명히 드러난다. 임대주택 시장에서 가난한 동네의 임대주들이 잘사는 동네의 임대주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번다. 지출인 유지비는 적은데 수입인 임대료는 큰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가난한 이들은 주택담보대출에 접근할 방법도 없다. 은행 거래 시에도 초과 인출을 하는 경우 부과해야 하는 수수료가 산더미다.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누구에게 이익인가?' '이것은 누구의 배를 불리는가?'
하지만 사회는 계속해서 이 불합리한 구조를 합리화한다. 바로 능력주의가 사회가 내세우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할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노력이 부족해서 가난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며, 복지를 확대하는 건 그들의 복지 의존성을 키우므로 국가의 돈을 투자해서는 안 된다고, 투자할 자원이 부족하다고. 저자는 사람들이 이 말도 안되는 선동에 휩쓸리는 건 이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서가 아니고, '우리의 삶이 가난한 사람들의 삶과 서로 맞물려 있다는 뼈아픈 진실을 외면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임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민간의 부가 증가할수록 사람들의 공공재에 대한 의존도는 낮아지고, 따라서 공공재에 투자하는 비용도 줄어들며 공공재는 가난한 자들의 것이 된다. 공공기관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게 되면 공공기관에서 공급하는 기회가 줄어들며, 종국에는 공공기관을 대체하는 민간기업이 만들어진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질이 떨어지고, 기회도 사라지며 빈곤선 아래의 가구는 계속 빈곤선 아래를 맴돌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여러 조사 데이터를 살펴본 결과, 저자는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지 '못하는' 것임을 지적한다. '우리'가 잘사는 것이 문제이지,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착취하고, 가난을 해소하는 것보다 풍요에 돈줄을 대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우리끼리만 배부르면 되는 배타적인 지역 사회를 만듦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을 계속 가난의 구렁텅이로 빠트리고 있다. 해결책으로 제시한 방안은 간단하다. 저소득층에게 충분한 원조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돈은 엄청난 액수의 돈을 체납 중인 불량 납세자들에게서 끌어오면 된다. 공정한 조세 집행이 어려운가? 하지만 그것이 반빈곤 정책 예산을 늘릴 수 없다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미국의 빈곤은 의회와 기업이 취하는 조치의 결과이기만 한 게 아니라 우리가 각자의 일을 할 때 매일 내리는 결정들 수백만 가지가 누적된 결과이기도 하다.' 소비자인 우리는 우리의 소비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우리가 우리의 소비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는 것처럼, 빈곤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종국에는 경제 격차로 갈라둔 담장을 무너뜨려야 한다.
그런데 이게 과연 미국만의 이야기일까? 읽으면서 내내 생각했다. 주어를 미국에서 한국으로 바꾸어도 위화감이 없다. 이 책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유다. 미국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국의 빈곤 문제를 분석한 책이지만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조사했어도 결과는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공공재 투자가 줄어들면 결국 잘사는 사람들은 민간기업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공공재를 사용하게 되면서 공공재에 대한 투자는 계속 줄어드는 악순환이라는 부분에서 현재 우리 사회의 뜨거운 화두 중 하나인 '민영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왜 민영화를 반대해야 하는지 이 책만 읽어봐도 바로 깨달을 것이다. 최근에 읽은 『가족 각본』의 내용도 생각이 났다. 가족 제도는 국가가 손을 써야하는 돌봄의 부담을 가족에게 전가시키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런 돌봄 노동 전가로 이득을 보는 마피아를 찾아내보라고 했는데, 이득을 보는 마피아는 역시 기업이었다. 국가가 개인의 부담을 덜어주지는 못할 망정 자신의 몫을 떠넘기기까지 하는 상황에서 개인이 어떻게 일어설 수 있겠는가.
*아르테 북서퍼 활동의 일환으로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가난은 물질적 결핍과, 만성통증과, 투옥과, 우울증과, 중독 등등이 겹겹이 누적된 형태일 때가 많다. 가난은 직선이 아니다. 사회적 병폐들이 단단하게 엉킨 매듭이다. 가난은 범죄, 건강, 교육, 주책 등 우리가 관심을 갖는 모든 사회문제와 관계되어 있다. 그러므로 미국에서 가난이 끈질기게 이어진다는 것은 수백만 가정이 세계 역사상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안전과 안정, 품위를 거부당한다는 뜻이다.- P62
그 원뿌리란 바로 가난이 상처이고 고난이라는 단순한 진실이다. 수천만 미국인이 가난해진 것은 역사의 실수나 개인적인 행동 때문이 아니다. 가난이 끈질기게 이어지는 것은 그걸 바라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P86
핵심은 하나의 의존, 그러니까 시민들의 국가에 대한 의존 상태를 약화함으로써 또 다른 의존, 그러니까 노동자의 기업에 대한 의존을 지킨다는 것이다. - P152
민간의 풍족함과 공공의 누추함을 가속화하는 움직임은 결국 가난한 사람들에게 해가 된다. 이는 공공재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 철회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이런 투자 철회를 통해 결국 에는 주된 기회의 공급처였던 공공기관을 대체하는 새로운 민간사업체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P189
솔직해지자. 과거부터 축적된 기회를 나눌 때는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없다. 이 나라의 잉여에서 이득을 얻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부를 나눠 가져야 하므로 결국 전보다 적게 가져가야 한다.- P199
나는 "재분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부자들이 세금을 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사회안정망을 균형 있게 재정비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미국이 전반적인 사회복지에 더 많이 투자하던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더 많이 돕고 부유한 사람은 더 적게 도와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P221
발밑의 땅이 불안정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를 제대로 살피기보다는 무엇을 잃을 수 있는가에 더 마음을 쏟으며 방어적인 태도로 우리 것을 지키려고 한다.- P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