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 긴즈부르그’라고 하면 가장 먼저 『치즈와 구더기』가 떠오른다. 학부 개론 수업 때 참고도서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독하진 못했다.) 이탈리아 프리울리 지방에서 있었던 이단 심문 기록 중, 결국 이단으로 처형당한 한 사람의 기록을 파고 들었던 책이었기에 『베난단티』는 어떤 일을 다룬 책일지 궁금했다. 『베난단티』는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 프리울리 지역에서 있었던 이단 심문 기록을 바탕으로 당시 민중신앙(베난단티 신앙)의 위상 변화를 분석한 책이다.
여기서, '베난단티'란 누구인가? 이들은 '마녀와 마법사의 사악한 계획에 반대하며 그들 저주의 희생자들을 치료해주었다고 언명'했다. '적들과 마찬가지로 산토끼나 고양이 등등의 동물을 타고 신비로운 밤의 모임에 참석했다.'(p.58) 이들은 이렇게 처음부터 마녀인듯 아닌듯 모순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마녀들과의 싸움에서 우리(베난단티)가 이기면 그해에 풍년이 든다'는 주장에서, 베난단티 신앙이 풍요제 같은 농경의식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또 다른 특징인 '육체에서 정신이 분리되는 현상'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존재한다.
심문 기록에서 베난단티의 진술은 '사바트가 실제로 가시적이라는 관념과, 환상과 상상이라는 그에 대립되는 관념 모두를 유지한 이단 심문소의 구도 속에 의도적으로 짜맞춰졌다.'(p.94) 초기에 베난단티로 심문에 응한 이들은 심문관들의 유도 심문에 쉽사리 넘어가지 않았으나, 시간이 흘러 '마법과 일반적인 마술적 현상에 대해 다양하고 더 회의주의적이고 동시에 더 합리적인 태도가 확산'되며(p.322) 결국 베난단티와 악마 혹은 마녀와의 연관성을 인정한다. 저자는 지속적으로 이들을 이단으로 몰아가고자 한 권력(가톨릭)과 합리적인 태도의 확산으로 인한 믿음의 부재가 베난단티라는 민중신앙의 쇠퇴를 가져왔다고 분석한다.
이단 심문 기록을 바탕으로 베난단티라는 민중신앙이 몰락하는 역사를 새로 쓴 작업도 좋았지만, 또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바로 '베난단티'의 기원에 대한 것이다. '죽은 자들의 행진'과 관련된 독일 신화와 '풍작을 위한 전투'와 관련된 리보니아나 슬로베니아의 신화가 합쳐져서 생겨난 민중신앙일 가능성, 즉 게르만 신화와 슬라브 신화가 혼합된 결과로 베난단티가 등장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프리울리 지방에 국한된 신앙이 아니라는 것이다. 발칸반도 케르스트나키 신앙에서 등장하는 빌레나치나 모데나 지역의 디아나 신앙처럼 유사한 민중신앙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해당 신앙은 지역마다 명칭은 다를 수 있지만 유사한 형태로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 퍼져있던 어떤 거대한 민중신앙의 하나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한 책이 카를로 긴즈부르그라는 대가의 박사 논문이었다는 사실에 감탄할 따름이다. 이전부터 존재한 기록을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쌓아올렸다고 하지만, '미시사'라는 새로운 역사 분야의 문을 엶과 동시에 지구사의 흐름 역시 안 놓치지 않았는가. 정말 대단한 역사학자임을 이 책을 읽으며 느꼈다.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