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급여명세서를 받아보았을 때, 밀물같이 밀려들던 감격은 가장 아래쪽의 세금란을 보는 순간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말았다. 쥐꼬리만 한 월급에서 무려 10% 씩이나 떼어가다니!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다. 신문에서 정치․경제면을 조금이라도 읽기 시작한 때가. 기억을 더듬어 보니 대학 시절 일본에서 잠깐 머물 때도 물건을 살 때마다 소비세 5%(지금은 8%로 인상되었다는 얘기도 들은 듯하다)를 별도로 내야 했다. 항상 동전을 챙겨 다녀야 하는 불편함은 별도라 치더라고, 작은 금액이지만 내 돈을 빼앗기는 듯한 느낌에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불평하는 나에게 한 선배가 우리나라 부가가치세 10%의 절반이지 않느냐며 다독거려줬다.) 한 푼이 아쉬운 서민 입장에서 세금은 안 낼수록 좋겠지만, 어디 나라 살림이 돈 없이 되는 일이던가.
오늘날의 국가는 많은 세금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세금으로 몇 안 되는 왕족과 귀족, 관리 들만 먹여 살리면 되었지만, 이제는 바야흐로 모두가 함께 사는 사회를 세워야 한다. 자연재해나 전쟁을 대비함은 물론, 도로나 건물 같은 사회 기반도 만들고 고쳐야 한다. 또 노인과 장애인 같은 사회 취약층을 위한 최소한의 생활비도 지원해 줘야 하고, 실업자들에게도 재취업할 때까지 적절한 직업 교육해주기도 한다. 명목을 따져 보면 불필요한 곳은 없고 죄다 부족한 곳뿐이니, 사람들은 그저 사회의 보호막이 조금이라도 촘촘해지길 바라며 일종의 보험처럼 세금을 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4~5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선거철에 가장 중요한 이슈는 세금과 복지다. 어릴 적에는 잘 몰랐지만, 막상 돈을 버는 입장이 되고 보니 100원도 아쉬울 때가 많고, 나라에서 세금을 내는 나에게 어떤 혜택을 줄 수 있는지 따지게 된다. 많은 후보가 세금은 적게 내고 복지는 늘리는 방법을 알고 있다며, 한 푼이 아쉬운 서민의 마음을 현혹한다.(사람들은 알면서도 달콤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다.) 『부자가 천국 가는 법』은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즉 부족한 세금과 부족한 복지 문제를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는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논의를 담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가지 않는 쪽은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내라고 하면, 그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절세를 해서 결과적으로 지금보다 더 세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이었다(뉴트 깅리치와 아서 래퍼). 진짜로 그럴까? 그러고 보니 자본가들에 사이코패스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를 어딘가에서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은 더 많은 돈과 성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에 그 말을 들으면서 ‘진짜 그런 사람이 있을까? 진짜 그렇게까지 해야지만 성공을 하는 걸까?’라고 대경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때의 충격이 되살아났다.
뉴트 깅리치와 아서 래퍼의 주장은 다 같이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 세금을 내고 있는 사람들을 무능력자로 여기는 발언처럼 읽혔다. 하지만 곧 우리 사회에도 세금을 많이 내면 ‘바보’라고 여기는 생각이 만연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씁쓸한 일이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을까? 그런데 내 결론은 간단했다. 부자든 아니든, 누구나 자신의 돈이 쓸데없는 곳에 쓰이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 살펴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는 일들이 있다. 가령 몇 백 억, 몇 천 억 같이 천문학적인 금액을 들여 커다란 건물들을 지어 대면서 학생들의 급식비는 지원할 재정이 없다고 하는 도지사나 시장, 본인을 위해선 몇 억짜리 피트니스 기구들을 사면서 국민들의 건강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이는 대통령. 그들이 쓰는 세금은 자신의 개인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 아닐 진데 가만 보면 꼭 그 돈을 자기 돈처럼 생각하는 듯싶다.
그렇게 따지면 무엇보다 세금을 내 봤자 공직자들의 사리사욕을 채울 뿐이라는 사회적 불신을 해결하는 게 우선이 아닐까 싶다. 당장 나부터도 ‘4대강에 쏟아 부었던 돈이면 무상 급식을 열 번도 더 했겠다’ 따위의 생각을 하게 되니 말이다. 허투루 쓰이는 돈을 줄이고 없애면, 사회에 돌아가는 몫이 더 커진다. 대통령의 소득 없는 해외 순방을 줄이고 저소득층을 지원하면, 사회의 안정성이 높아진다. 어린이, 노인을 위한 복지를 확대하면 중장년층의 부담이 줄어든다. 그렇게 차차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다면 세금을 더 내도 된다는 국민의 인식이나 사회 분위기가 형성될 게 분명하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이제는 사람들의 필수품이 된 스마트폰을 사려면 적어도 며칠은 공부를 해야 한다. 보조금은 어떤 경우에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지, 대리점의 권유에 현혹되지 않고 어떤 요금제를 택해야 하는지, 다양한 멤버십 혜택은 어떻게 찾아 써야 하는지 등등. 정보는 점점 더 복잡해져서 공들여 찾아보고 핸드폰을 사지 않는 사람은 호구 취급당하기 마련이다. 기업은 소비자들을 속이지 않으면 이익을 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소비자들은 따로 수고를 들이지 않으면 불필요한 돈을 내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나라에서 단통법을 만들었지만 몇 달이 지난 지금 상황은 예전과 다를 바 없다.
사실 사회 곳곳에도 이런 비상식적인 문제가 많다. 국민들은 세금이 투명하게 쓰이고 있다고 믿지 못하고, 국가는 기업이나 국민이 세금을 정직하게 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또, 기업은 탈세 등의 방법으로 비자금을 만들고, 이런 비자금으로 정부 모처에 이런저런 로비를 한다. 서로 속고 속이는 불신의 굴레에서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을까? 이미 답을 알고 있어 더 어려운 문제다. 부패의 사슬을 끊는 정직하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든다면 불신의 벽은 낮아질 터이다. 국가-기업-국민, 서로 간의 불신을 해소하고 함께 도와야지만 지금의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다는 사회적 공감이 절실하다.
생각해 보면 농경사회나 산업사회처럼 새로운 전환기를 맞을 때마다 우리는 좀 더 정직하고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굴곡을 지나왔다. 사이코패스가 무서운 이유도 상식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런 비상식을 바로잡을 때가 아닐까. 세금이 허투루 쓰이지 않는 국가, 내가 낸 세금이 나중에 나에게 돌아올 거란 믿음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 살고 싶다. (아참, 우리 사회의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하게 하려면 표지 디자인과 제목은 꼭 바꿨으면 좋겠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