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연설이 있는 날 오전 열 시엔 항상 TV 채널을 7번으로 돌렸다. 연설을 중계하지 않는 공중파 채널은 KBS 2TV뿐이잖은가. 많은 사람이 그렇듯 나 역시 대통령 연설을 한 번도 제대로 들은 적이 없다. 주변 친구들에게도 물어봤지만,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대통령 연설이란 교장선생님의 훈화처럼 고리타분하고 뻔한 이미지다. 그래서인지 『대통령의 글쓰기』의 저자가 한때 대통령 연설문을 썼다는 얘기를 듣고서도, 대단해 보이기보다는 ‘대부분의 사람이 듣지 않을 글을 써야 하다니, 참 허무하고 불쌍한 직업이구나!’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편집자로서 내 일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저자와 독자는 물론, 디자이너, 서점 MD, 사장님(!) 등 수많은 사람의 의견을 듣고 조율해야 한다. (어쩌면 원고를 읽는 행위도 저자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라 우길 수도 있겠다.) 책을 읽으면서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익숙한 내가 단 한 번도 대통령의 연설을 제대로 들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그동안 (일하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진짜로 경청해 온 것이 맞는지 반문해 보았다. 어쩌면 겉으로만 귀 기울여 듣는 척 하면서 영혼 없는 맞장구만 쳐 온 것은 아닐까?
두 대통령은 달랐다. 자신의 손목시계에 ‘침묵’이라 새겨 넣은 김대중 대통령과 토론을 통해 다른 사람 의견 듣기를 좋아했다던 노무현 대통령. 경청하는 자세의 모범을 보였다. 국민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최근의 고집불통 두 대통령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수많은 반대 의견을 깡그리 무시하고, 자신의 의견도 들어달라고 시위하는 사람들에게 물대포를 쏘는 건 분명 경청의 자세는 아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경청이란 덕목은 나 같은 일개 편집자보다 각계각층의 의견을 조율해 한 나라를 이끌어야 하는 대통령에게 더 필요할 터이다.
책에서는 침묵이나 겸손을 미덕으로 여긴 동양의 유교 문화가 지금 시대에는 맞지 않는다고 한다. 일견 저자의 말도 타당하다. 침묵만으로는 상대방과 소통할 수 없으니까. 그러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경청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귀 기울여 듣는다는 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자 이제부터 당신과 대화를 나누겠다는 마음의 표현이다. 남의 말을 경청하다 보면 당연히 궁금한 점이 생기고, 반박하거나 칭찬할 점도 생기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 수첩에 적어 준 글을 읽지 않고도 나만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나라에 큰일이 생기면 언론에서 전(前)대통령은 물론 주요 인사들의 견해를 비중 있게 다뤘다. 그런데 요즘은 워낙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죽자 살자 무조건 큰 소리로 떠들어야 한다. (그래서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의 인기가 높은지도 모르겠다.) 남보다 돋보여야 살아남는 ‘자기 어필의 시대’를 살면서, 경청의 가치는 많이 훼손되었다.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만 해서 과연 진실한 소통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아직 이야기를 들어줘야 할 사람이 많다. 진실한 대화가 부족한, 외로운 사회를 타파하기 위한 첫걸음은 경청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