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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숨에 읽는 사기
  • 시마자키 스스무
  • 18,000원 (10%1,000)
  • 2014-01-20
  • : 61

 

국사나 세계사는 점심시간 후 5교시 수업 이미지다. 창문 안쪽으로 쏟아지는 햇살에 풀풀 날리는 먼지들이 보인다. 조용한 교실에서 들리는 소리라곤 사건 연도와 주요 인물, 역사적 의의 따위를 칠판 가득 판서하는 선생님의 분필 소리뿐. 졸음이 쏟아진다. 그래서 간혹 역사를 좋아한다는 친구를 만나면, ‘아니, 많고 많은 과목을 놔두고 왜 하필 역사를 좋아해?’라고 묻고 싶었다. 그중에서도 진이니 한이니, 한 글자 이름의 나라 이름이 쭉 이어지는 중국사는 잘 외울 수도 없어서 특히나 더 싫어했었다. 어렸을 때 기억이 강렬했는지 다른 역사책들은 곧잘 읽게 된 지금까지도 중국사는 별로 흥미가 일지 않았다.

아무리 고전(역사적 가치가 있는 책)이라지만 중국사에 대한 지식이 제로에 가까운 사람이 사기의 고갱이를 편년체 방식으로 재구성한 <단숨에 읽는 사기>를 책을 읽으려니, 처음엔 고사성어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와신상담’ ‘관포지교’ 같은 사자성어에 얽힌 사연을 따라가다 보니, 외우기 힘들던 인물과 사건들이 차차 들어왔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의 지식은 사마천 하면 사기, 공자 하면 논어와 군자, 진시황 하면 분서갱유와 불로초처럼 단편적인 것에 그쳤다. 그런데 사기의 구성, 공자와 기린의 관계, 진시황 같은 유명한 왕들에 얽힌 사건 등 의외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접하고 나자 삼황오제나 중국의 봉건제도가 서양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등 지식을 쌓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어졌다.

오래 묵은 선입견을 버리고 읽게 된 책에는 좋은 얘기들만 적혀 있지는 않았다. 현명하게 나라를 잘 다스린 성군에 대한 기록도 있었지만, 그 후엔 반드시 나라를 망친 폭군이 등장했다. 틈만 나면 남의 나라를 탐내고, 배신과 이간질, 증오와 폭력이 넘쳐난다. 사마천은 2천 년 전 좋은 일을 권하고 나쁜 짓은 되풀이하지 말라고 이 책을 남겼을 텐데, 우리는 과연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까? 그다지 변한 게 없는 요즘 세태를 떠올리자 씁쓸함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러나 당장 보기 싫다고 잘못을 기록하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더 반성과 성찰이 없는 세상, 언제나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세상이 되었을 게 분명하다.

그렇게 옛날 중국 사람들과 지금 우리의 모습을 비교하다 보니 과거니 미래니, 중국이니 한국이니 하는 시․공간적 경계는 아무 상관이 없어졌다. 사실 얼마 전까지 옛날 사람들 이야기는 나와 동떨어진 듯 여겼다. 심지어 그들의 역사가 판타지 소설처럼 읽힐 때도 있었다. 수천 년 전 그들의 삶과 지금 우리의 삶이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그동안 마음속에 굳건히 서 있던 경계의 벽이 허물어지는 듯한 느낌이다. 혹은 그동안 점처럼 동떨어져 있던 지식, 사람들이 선으로 이어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세상이 한층 더 넓고 깊어진다.

대학 졸업 때까지 역사는 시험을 보기 위한 과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입시, 학점, 취직 등 여태껏 눈앞에 놓인 허들을 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쳤다. 그러다 보면 모든 독서가 수단이나 과제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떤 책이든 읽고 사색해서, 진짜 내 것으로 소화해내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것은 내 안의 점들을 선으로 잇는 작업이 아닐는지?『단숨에 읽는 사기』를 통해, 역사책을 읽어야 하는 나만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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