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의 여정을 따라
AusterlitZ 2025/02/13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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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
- 댄 레빗
- 20,700원 (10%↓
1,150) - 2024-11-27
: 1,195
*. 까치글방 서포터즈 2기 활동으로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프랑스 탈인상주의 화가 폴 고갱은 타히티로 떠나 대표작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남겼다. 이처럼 심오하고 근원적인 질문에 과연 무어라 답할 수 있을까. 비단 고갱의 작품명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고, 이는 사실 인간이 아주 오랫동안 가진 의문이었다. 온갖 학문을 발전시키며 이에 대한 더 나은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지금만큼 발전할 수 있었다. 마치 점근선처럼 우리는 아마 이에 대한 완벽한 해답에 영영 도달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무엇인지에 관해 실마리를 얻은 때가 있었다.
책은 시계를 약 100년 전으로 되돌려 이야기를 들려준다. 원자가 모여 온갖 물질을 이룬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도 않는 원자가 모여 생물은 물론 우리가 발딛고 사는 세계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좀처럼 이해하기가 힘들다. 이 수많은 원자가 어떻게 탄생했으며, 어떻게 세계와 생명을 구성하게 됐는가? 이 과정에서 과학 전공자가 아니라면 생소한 인물이 여럿 등장한다. 저자는 이들에 관한 설명을 아끼지 않는다. 조르주 르메트르에 따르면 빅뱅 이후 엄청난 온도와 밀도 때문에 수소, 헬륨, 리튬, 베릴륨 같은 주요 원소가 생겨났다. 이에 더해 세실리아 페인은 별 내부에 다양한 원소 비율을 밝혀냈다. 이를 통해 무거운 원소를 탄생시키는 엄청난 에너지는 별 내부에서 나온다는 게 알려졌다. 이러한 발견이 인정되자 빅뱅을 인정하지 않던 프레드 호일도 이를 거들었다. 그에 따르면 무거운 원소들이 합성되는 원인은 적색거성 내부의 엄청난 온도와 초신성의 폭발 탓이다. 이런 원소들은 중력에 이끌려 회전하여 마침내 태양계 행성을 형성했다. 이를 계산하고 밝혀낸 이는 빅토르 사프로노프다.
생명이 자랄 수 있는 배경이 탄생하는 데에는 수십 억년이라는 장구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생명에는 물이 필수적이다. 이 물은 대부분 멀리 우주에서 왔다. 우리 몸에 남아 있는 물 분자는 이처럼 혜성과 소행성을 타고 온 것들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라고 한다. 즉 생명과 우주는 뗄 수 없는 관계인 셈이다. 스탠리 밀러의 유기 분자 실험은 논쟁이 있었지만 결국 사실로 드러났다. 여기까지 밝혀지자 생명의 기원에 관한 발견은 급물살을 탔다. 칼 우즈, 레슬리 오겔, 프랜시스 크릭은 공통적으로 최초의 세포는 이중나선형 DNA가 아니라 한 가닥 RNA에서 비롯했다는 답을 내놓았다. 비록 생명이 어디서 기원했는지는 여잔히 확실한 답은 없지만, 열수가 분출되는 심해가 무척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장소가 어디든 간에 우연히 탄생한 생명 덕분에 우리가 사는 지구는 다른 행성과 완전히 다른 곳이 됐다. 식물, 진핵세포, 균류는 곧 동물 발생으로 이어졌다. 동물에 관한 탐구는 우리가 생존을 위해 매일 먹는 음식, 그리고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를 더욱 깊게 연구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책은 우주의 탄생부터 세포의 작동 메커니즘까지를 쭈욱 설명하고 있다. 거시적인 주제에서 미시적인 사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진가는 거시적인 것과 미시적인 것을 단순히 병치시키거나, 이를 나열하여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마치 스토리와 플롯의 차이처럼 책은 원자라는 대상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 몸 속 아주 작디 작은 세포와 거대한 우주를 이루고 있는 물질이 한 곳에서 왔음을 알려준다. 오랫동안 다큐멘터리 제작자로 활동한 이력이 물씬 느껴지는 대목이다. 즉 원자의 탄생을 추적하는 여정은 곧 우리는 물론 우리를 둘러싼 모든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과 마찬가지다. 인간이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수를 ‘천문학적’이라고 하는데, 우리 몸 속 세포에 대한 숫자도 무척 천문학적이다. 생물은 소우주다. 한낱 작은 생물과 광대한 우주는 마침내 이렇게 연결된다. 원자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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