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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ditore님의 서재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
  • 브누아 브레빌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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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30
  • : 425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코리아에서 모집한 신간 서평단에 선정되어 이 잡지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1. 〈르완다는 정말 살만한 곳이 되었을까? - 한국 저널리스트가 다녀온 종족 학살 30년 이후의 현장 〉(p.122~127)

  내게 르완다라는 나라는 여전히 낯설다. 중학생 때 우연히 보았던 영화 <호텔 르완다> 속 참혹한 내전만이 머리를 채울 뿐이다. 벨기에 식민 통치가 남긴 후투족과 투치족의 분열은 온 국가를 찢어놨다. 그럼에도 기사가 전하는 오늘날 르완다는 실로 놀라울 정도다. 

  우선 제노사이드 진상 규명과 처벌을 국제사회에 맡기지 않고, 지난한 과정을 스스로 떠맡았다. 마찬가지로 제노사이드를 겪은 시에라리온, 캄보디아, 구 유고슬라비아와 구분된다. 성평등지수(Gender Gap Index)에서도 줄곧 상위권을 차지하고, 2008년부터 비닐봉지를 제조, 사용, 수입, 판매까지 금지했다. 그리고 멸종 위기종인 마운틴고릴라까지 무척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1인당 GDP는 3천달러 대로 여전히 세계 최빈국 수준이지만, 르완다는 카가메 대통령이 4선에 성공해 장기집권 중이다. 치안과 미화를 최우선으로 하고, 강력한 리더십과 만장일치 수준인 지지율을 보면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가 떠오른다. 물론 리콴유과 김대중이 벌인 ‘아시아식 민주주의’에 대한 논쟁이 떠오를 정도로 이는 명암이 뚜렷하지만, 결국 나라를 부강하고 국민 생활을 윤택하게 했다는 건 사실이다. 한국도 군부 독재 시절 비슷한 경험을 했다. 물론 당시 한국과 싱가포르, 그리고 르완다가 처한 국제정치 상황이나 현재 지정학적 입지가 동일하지 않다. 그래서 르완다가 이런 ‘개발독재’ 모델을 답습해도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유선 통신을 건너뛰고 빠르게 모바일 환경에 적응한 오늘날 르완다에서, 쿠데타가 만연하고 민주화 운동도 결국 수포로 돌아간 다른 국가의 사례가 재발하지 않기를 바란다. 개발독재가 성공적인 발전국가로 이어질 지는 물론 더 지켜봐야겠지만.


2. 〈종이책은 환경위기 책임에서 자유로운가? - 숲이 사라지고 탄소가 늘고 있다〉(p.96~102)

  우리 일상에는 수많은 상품이 있지만, 그 중에서 아마 책만큼 품종이 다양한 물건은 찾기 힘들 것이다. 많은 독자에게 선택받고, 꾸준히 읽히는, 이른바 베스트와 스테디셀러를 제외하면 책들 중 절대다수는 결국 출판된 후 폐기될 운명이다. 책을 생산하는 것만으로도 간과하기 힘든 환경 문제를 일으킬 수 있겠다. 심지어 책이 폐기되어 매립, 소각되면 환경에 더 큰 문제다. 그나마 다른 종이로 재활용된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재활용에도 비용이 따른다. 즉 출판사 입장에서 책이 팔리지 않으면 생산비 손해만을 감수할 게 아니라 반품과 폐기비용까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내연 기관이 전기자동차로 대체되는 것처럼, 종이책 역시 전자책이 보급되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질 수 있다. 하지만 종이책이 주는 질감과 물성, 그리고 감성까지 고려하면 미래에도 완전히 대체되긴 힘들 거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 역시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훨씬 많이 사고 있다. 책이라는 매체가 워낙에 종류가 다양하다 보니, 그리고 출판사-인쇄소-서점이 중심이 되는 출판생태계에서 저마다 이해 관계가 얽혀있다 보니 해결하기는 어려운 문제다. 다만 책을 사랑하는 독자 입장에서 금세 품절, 절판된 후 결국 폐기되는 책의 수가 어마무시하다는 건 꽤나 서글프다. 펄프 종이가 보다 많이 유통되어 판매 단가도 낮추고, 더욱 친환경적으로 접근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도서 시장이 협소하고 그에 따라 문고본이 나올 수 없는 우리나라에선 무척 요원한 이야기인듯 하다. 거대 펄프 회사들이 과점으로 장악한 시장 역시 큰 문제라는 것도 기사를 통해 알게 됐다.  


3. 〈역사 조작은 어떻게 자행되어 왔는가? - 2차 세계대전에서 근동분쟁까지 조작된 집단기억〉(p.4~10)

  한때 <콜오브듀티(Call of Duty)>라는 게임 시리즈를 무척이나 즐겼다. 제목처럼 전쟁을 다루는 게임인데, 비단 게임을 막론하고 드라마, 영화, 그리고 수많은 도서까지 전쟁은 곧 2차 세계 대전과 동의어였다. 인류 역사상 최대, 최악의 참사에서 우리가 느끼고 새겨야 할 교훈은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다만 모든 일의 중심에는 미국이 있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영국, 프랑스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이후 전세가 바뀐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독일과 소련의 전쟁으로 전선이 둘로 나뉘었음을, 그리고 2차 대전 당시 전체 피해 중 절반 이상을 소련이 고스란히 받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냉전 때 미국과 소련이 극한으로 경쟁하면서 쉬이 잊혔다는 게 기사의 논지다. 당장 2차 대전 발발 전만 해도 영국과 프랑스는 나치 독일을 훨씬 우호적으로 대했다. 적어도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보다는 낫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평화를 위한 최선이라 여긴 뮌헨 협정으로 전쟁을 억제했다. 비록 1년 짜리 평화였지만 말이다. 물론 당시엔 최선의 결정이었을지도 모르나 결과적으로 이는 전쟁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래서 푸틴이 현재 대립각을 세우는 서구 국가를 상대로 '역사수정주의'를 비난하는 연설은 생각거리를 무척 많이 던져준다. 역사적 맥락을 망각하고 특정 사건만을 단편적으로 바라보면 러시아나 하마스-팔레스타인 같은, 주류 세력의 적대자를 절대 악으로 바라보기 쉽다. 이는 국제 정치를 바라볼 때 가장 경계해야할 부분이다. 절대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그리고 근시안적으로 바라볼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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