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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니오 크뢰거 / 트리스탄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 토마스 만
- 13,500원 (10%↓
750) - 1998-08-05
: 5,578
몇년전 아무튼 모든 일들이 예술과 관련된 것이라고 느껴졌을때 그 때 읽었던 책 중 하나다. 토마스 만은, <베니스에서의 죽음>으로 나를 독일로 이끌었고 <토니오 크뢰거>로 내가 갖고 있는 가장 내밀한 질문을 이해하게 만들었다. 영원히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 보편적이고 정상적이며 스스로와 싸우지 않는, 자기 혐오가 끼어들 곳이 없는 삶과 언제나 자기자신에 대한 모멸감에 시달리며 한없이 추락하는, 발 밑이 푹 꺼진 삶. 그 두 삶 사이의 투명한 거리에서 서성이는 모든 방랑자를 위한 성서. 관념적인 소설과 글을 죽도록 싫어했던 내게도 토니오 크뢰거의 거의 마지막, "읽지마라, 외로워서 우는 왕이 너한테 무슨 상관이겠니" 부분은 (냉철하고 시니컬한) 바깥의 세계와는 관계없이, 외로워서 우는 왕이 중심에 있는 것이 나의 세계라는 것을 깊이 각인시켰다.
이 작품에 대한 훌륭한 글 한편이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책 <작가의 얼굴>에도 실려있는데, 그 부분을 짧게 옮겨본다. (필히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길ㅠㅠ)
"토니오 크뢰거는 많은 작가들에게 하나의 본보기가 되는 인물이며, 많은 독자들에게 동일시의 대상이다. 100년 전의 이 단편에서 많은 이들이 거듭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으니, 고독하고 불우한 사람들,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찾느라 너무나 힘겹거나 끝내 찾지 못하는 사람들, 상궤에서 벗어나 있고, 그런 스스로를 힘들어하는 사람들이다. 깨달았다고 생각한 다음 순간에도 의심을 멈추지 않기에 더 많은 것을 알고,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많은 것을 알기에 더 많이 괴로운 사람들. 이 작품은 바로 그런 이들을 위한 것이다.
이렇게 <토니오 크뢰거>는 두 세계 속 혹은 그 사이에 존재하면서 그 어느 편에도 편안하게 안주하지 못하는 이들, 인간사를 묘사하거나 그 묘사를 평하면서도, 정작 스스로는 그 인간사에서 밀려나거나 실패하리라는 두려움에 때로 진저리를 치는 그 모든 사람들에게 시적 교본이 되었다. 이렇게 토마스 만의 이 단편은 고향을 상실한 사람들의 성서가 되었으니, 이들은 마침내 그럭저럭 마음 붙일 피난처, 어쩌면 고향을 얻었다. 바로 문학이다."
-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작가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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