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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go님의 서재
  • 내 서재 속 고전
  • 서경식
  • 12,600원 (10%700)
  • 2015-08-24
  • : 1,496
고전’이란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 고전의 고(古)는 옛 고 자고, 이는 시간적으로 오랫동안 혹은 오래 전이라는 사전적 뜻의 단어와 부합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높을 고(高)를 쓴 다른 의미의 高典(고전). 높이 두고 우러러 볼만 하거나 인식의 지평이 이미 높은 곳에 닿아 있는 작품을 지칭할 때 등장 할 법한 단어다. 예전의 것을 말하는 시간적 의미의 앞선 단어와는 달리, 후자에 등장한 고전(高典)은 공간적 의미의 단어다. 서로 다른 뜻을 가진 두 단어를 나란히 놓고서야 이 책, 서경식의 <내 서재 속 고전>을 겨우 펼쳐 놓을 수 있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시간과 공간을 모두 아우르는 책이기 때문이다.

<한겨레>에 연재 된 16개의 칼럼을 한데 모은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저자 서경식의 ‘고전’을 소개하는 책이다. 그러나 이렇게만 말하면 절반의 반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 셈이다. 서경식의 고전을 제대로 읽기 위해선 수만가지 갈래로 뻗친 촘촘한 줄기와, 뼈를 부수는 힘으로 파고든 뿌리 모두를 조망할 수 있는 시야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 일단 두 개의 명제를 던져 놓기로 한다. ‘보편’과 ‘특수’다.

책을 펼치자마자 등장하는 ‘고전’의 작가는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 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미국인으로 재일조선인 2세인 작가의 문학적 분신이라 부를 만한 작가다. 사이드 저작의 주된 내용은 ‘보편성’과 ‘특수성’인데,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반의어로 통하는 이 두 단어는 사이드를 거쳐 지배자- 피지배자 혹은 식민지- 탈식민지 등으로 발화된다.

“문학에서 지배층의 이야기에 피지배자들의 대항적인 이야기를 대치시키는 것이 장차 인류의 ‘새로운 보편성’을 구축하는 데에도 중요하다”(p.73)

아닌게 아니라 사이드는 자신의 저작 <지식인의 표상>에서 보편성을 따로 언급한 적이 또 있다. “보편성이란 우리의 출신배경, 언어, 국적이 타자의 존재로부터 자주 우리에게 보호막이 되어줌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해 얻게 되는 확실성에 안주하지 않고 이를 넘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편성은 또한 대외 정책이나 사회 정책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인간적 행위에 대한 단일한 규준을 찾아내고 이를 유지하고자 노력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는 보편성을 너무나 오랜 시간 해체한 나머지 특수성의 위치까지 끌어올려진 탁월한 예인데, 마이너리티(소수자)로서의 특수한 위치와, 문학이 갖는 보편성(누구나 읽을 수 있고, 어디에서나 읽힐 수 있는)이 섞여 전혀 다른 빛깔을 길어낸, 그야 말로 특별한 정의다. 이 말을 전달할 때 저자는 망설임이 없어 보인다.

두 번 중복되어 다뤄지는 사이드 외에도 저자는 ‘프리모 레비’ ‘루쉰’등을 들어 절망과 희망 사이의 낙차를 재는가 하면, ‘가토 슈이치’와 ‘고흐’로 인간 정신의 고된 강건함을 고요히 증언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 이런 구절

'중세의 가을'은 인상 깊은 번역이지만, 하위징아 자신이 감수한 영어 번역에서는 이 '가을'이란 말을 'waning', 즉 '조락'으로, 프랑스어 번역에서는 'decline', 곧 '쇠퇴'로 옮겼다. 말하자면 하나의 생물체의 사멸처럼, 지은이는 '중세'라는 시대가 몰락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려는 것이다.

이 책 제목이 불러일으킨 연상으로 내 뇌리에는 지금 '현대의 가을’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지금 나는 ‘현대’라는 시대의 몰락을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거대한 폭력과 함께했던 이 시대는, 그러나 동시에 가냘프긴 했으나, ‘진보’와 ‘평화’라는 가치에 대한 막연한 희망을 품게 했다. 20세기에 들어 두 번의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등으로 이런 희망은 뼈아픈 타격을 받았지만, 그 타격을 교훈 삼아 미래에 대한 기대를 이어가려는 사상적 시도가 이뤄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즉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를 석권하는 시대를 맞아 그런 사상적 시도는 일거에 탁류 속으로 떠밀려, 멈춰 서서 조용히 성찰하는 태도를 상실했다. 도처에서 냉소주의가 야만스런 개가를 올리고 있다.”

요한 하위징아의 <중세의 가을>을 언급한 저자는 인간 군상의 포악하고 나약한 역사를 외면하고 싶은 얼굴로 돌아온다. 이 수없이 많은 얼굴과 표정들을 하나씩 포개어 겹쳐놓은 것이 바로 이 책 <내 서재 속 고전>이다. 단 하나의 명료한 줄기를 갖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책들이 있지만, 더러는 여러개의 팔을 뻗어 다양한 층위의 열매를 수확하는 책들도 있다. 명확히 후자에 속하는 책이다.

“모든 사상과 행동은 컨텍스트(문맥)와 포지셔널리티(위치)를 빼고는 이해할 수 없다”고 저자는 말했다. 식민지의 육체를 갖고 침략의 문맥을 짚어나가는 시선은 고요하고 명징하기에 강력하다. 독자가 공감하기 전에 먼저, 서둘러 공감하거나 아파하지 않는 그러나 엄연히 상처 입은 이 언어들은 보편을 보편적으로 밖에 읽지 못하는 나의 빈약한 감수성에 논리로 호소한다. 이것은 오래 남을 책이다. 그러나 동시에 높고도 넓은, 보편과 특수 양면의 성곽 위로 올려다줄 사다리이기도 하다. 이 말을 할 때 나 또한 망설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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