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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go님의 서재
  • 쇼코의 미소
  • 최은영
  • 13,050원 (10%720)
  • 2016-07-07
  • : 36,178
나는 한국 소설에 뿌리깊은 불신을 갖고 있다. 본격적인 독서를 시작할즈음 읽게 된 여러권의, 이른바 최근 한국소설 혹은 젊은 작가의 소설이 나의 실망을 더욱 부추겼는지도 모른다. 그런 한국소설들은 너무나 나이브하고 현실을 반영하는데 급급해 숨막히기만 한 글자들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체로 그러했다. 이와같은 이유로 나는 김애란을 그닥 좋아하지 않고 감정만 있고 서사의 구조적인,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류의 구조의 미학은 빠져있는 신경숙, 은희경, 김연수 등등의 책들도 그닥 탐독하진 않았다. (이것은 취향의 문제다.)

분명 개인의 취향이기도 하겠으나 사는 것이 숨이 턱턱 막히니 책을 읽으면서까지 그 숨막힘을 연장하고 싶지않은 마음이 컸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헐떡임을 참아가며 읽어내도 끝맛은 씁쓸하기만 할 뿐이니.
그러나 반대로 그런 이유와 마찬가지로 훌륭한 소설들도 있다. 사실은 몇번 만나지는 못했지만, 감히 소개하자면 이번엔 이 책이다. '쇼코의 미소' - 한국 문학을 일년에 한권은 읽을까? 싶은 내게는 이 책의 저자도 책 제목도 다 낯선 것이었지만 읽기를 결심하게한 문장이 있었기에 읽었다.

그리고 읽고나서는 울었다. 나는 이처럼 값비싼 위로를 받아본지 오래된것 같았고, 해마다 찾아오는 늦겨울의 내 생일이 기쁘지 않은지는 벌써 4년이 훌쩍 지난것 같았다. 내가 이른바 경멸하던, 현실의 반영, 치밀하려 애쓰지만 보는 이의 숨통만 조를 뿐인 지긋한 현실의 거울. 그러니까 한국소설. 그러나 한국소설. 현실의 문턱을 차근히 밟는 이 소설이 뭐가 그렇게 다른걸까 생각하다가 작가의 말을 떠올렸다. 그는 글들을 마치 연애하듯이, 오래 짝사랑해온 사람과 연애하듯이 썼다고 말했다. 그 투명한 기다림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글들이어서일까. 한국어가 이처럼 맑고 깨끗하게 느껴진적은 별로 없었던것 같다.

힘을 내라고, 일어서라고, 할 수 있다고, 작가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소설 속 주인공들도 그런 말은 생각으로도 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그런 마음이 아니다. 그냥 그들은 포기했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기우뚱거리고 초라해졌던 이야기들. 이제 그만두겠다는 주인공의 말에 되려 위로를 받게 되는건 어떤 이상한 양가감정일까. 나는 나이브하고 지극히 현실의 반영일 뿐인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위에서도) 말했다. 그러나 반대로 어떤 이야기가 내 어깨를 자꾸만 흔들어댄다면 그 이야기는 이미 나이브한게 아니지 않을까.

김애란의 무심함도 편혜영의 치밀함도 없이 이를테면 '영하의 이야기를 영상의 문체로 써내려가는' 오랜만의 한국소설이다. 이제 한국소설을 읽을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괴로운 생일을 몇번이나 보내고, 외로운 시간들을 몇년이고 흘려보낼테지만 계속 용기를 낼거고, 버티는 일이던 포기하는 일이던 둘 모두에게 용기가 필요한 일임을 배울것이다. 이 새벽동안 잠들지 못했다. 쇼코의 미소, 그 글의 끝 문장처럼 내 마음에도 서늘한 미소가 베인다.

+ 계보학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이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이해'하는 소설이기 때문일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많은, 이해받지 못해 서늘해진 이야기와 너무 섣불리 이해해 되려 우스워진 이야기들을 만나왔다. 우리 시대의 멘토들은 타인을 이해하라 설파하지만, 이 책의 작가는 누구보다 먼저 나를 이해하려 한다. 나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남을 여행하는 지도가 될것임을 알고있다. 그 투명한 노력들이 한동안 세계를 무구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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