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예고편을 보고 문득 소설이 읽고 싶다는 생각에 책을 샀다.
알츠하이머 병의 환자의 짧은 기억과 망각, 그리고 혼돈을 표현하듯....
또는 그가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메모하고 녹음하듯 글은 짧게 나뉘어 있다.
짧아진 기억과 섞이는 기억 사이의 혼돈....
소설은 그 혼돈의 인간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기에 어느새 내가 그가 되어 정신없이 책을 읽어 나갔다.
잘 읽을 수 있는 소설... 그리고 마지막 한 방...
죽음은 두렵지 않다. 망각도 막을 수 없다. 모든 것을 잊어비니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닌 것이다. 지금의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내세가 있다 한들 그게 어떻게 나일 수 있으랴. 그러므로 상관하지 않는다. 요즘 내가 마음에 두는 것은 딱 하나뿐이다. 은희가 살해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내모든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이 생의 업, 그리고 연.. - 28쪽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해 결말은 모르지만, 예고편에 맞추어 이 책을 끝까지 정신없이 읽어나갔다가 결말을 보고 다시 읽어보았다.
편하게 빠르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만,
알츠하이머 환자의 머릿속에 던져진 것 같은 멍함과 혼돈을 남기는 소설이다.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책을 읽는데 갈피에서 메모지가 툭 떨어진다. 오래전에 베껴 적은 것인지 종이가 누렇게 바랬다.
"혼돈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혼돈이 당신을 쳐다본다. _니체"-62쪽-
"아무리 치매 환자라도 감정은 남아 있대."
감정은 남아 있다. 감정은 남아 있다. 감정은 남아 있다. 종일 이 말을 곱씹는다. (53쪽)-
하루 이틀이 지난 것 같기도 하고 영원이 지난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다. 오전인지 오후인지도 모르겠다. 이 생인지 저 생인지도 분명치 않다. 낯선 사람들이 찾아와 자꾸만 내게 여러 이름을 댄다. 이제 그 이름들은 내게 어떤 심상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사물 이름과 감정을 잇는 그 무언가가 파괴되었다. 나는 거대한 우주의 한 점에 고립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 1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