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멜은 네덜란드의 20살 청년이었다. 무역을 하기위해 멀고 먼 일본으로 향하는 상선에 몸을 실었던 하멜은 존재조차도 몰랐던 조선에 갇혀 무려 13년을 살게 되면서 자신이 그 곳에서 관찰한 내용을 일지에 적는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아는 하멜 표류기. 하지만,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하멜은 17세기 네덜란드의 전쟁기술, 건축, 음식 등의 문화를 삶의 흔적을 통해 조선에 남겨준 인플루언서였으며 최초의 서양인 골목길 여행자였다. 뿐만아니라, 갑작스런 위기와 예상치 못한 환경의 변화에서도 빠르게 적응하며 생존하는 오디세우스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제주도에 난파를 당했던 하멜은 구조 당시 첫 만난 조선인에게 와인을 건네고 약주를 받는다. 한양을 거쳐 정약용의 유배지였던 강진에 7년 동안 살았을 때에는 어려운 상황에도 네덜란드 고유 패턴인 해링본(청어뼈) 무늬로 돌담을 쌓아 올렸다. 오렌지색 머리에 치마를 입었을 것 같은 건장한 네덜란드 청년은 고향의 국민생선이었던 청어를 소금에 절이는 방법 뿐만아니라 네덜란드식 경제 관념과 어려운 상황에 굴하지 않고 회복탄력성을 보여준 리더였기도 하다.
제주의 여름 태풍, 바다 끝 저 현무암 해변에 밀려왔던 하멜의 흔적을 300년이 지난 오늘 따라 걸으며, 코로나로 인해 답답한 삶에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는 힘을 얻을 수 있다니 정말 감동적이다. 작가 또한 팬데믹의 고통속에서 하멜에게서 받은 선물과 같은 만남을 이렇게 이야기 한다. '여행은 그 과정 자체로 보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