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슬픔에 대해서 천천히 이야기해보기로 하겠다.
함부로 사랑에 속아주는 버릇,
그리고 함부로 인생에 져주는 즐거움.(p5)
그래서 천천히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 의도는 허망하게 배반당하고 말았다. 첫장부터 순식간에 빨려들어가 다 읽을 때까지 도무지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세상엔 봄이 오고 나에겐 당신이 오네(작가의 말)
내게도 "당신"이 온 봄날이 있었던가. 더듬어 보자면 구석기 시대의 기억 쯤 되려나. 어떤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며 그래, 나도 함부로
사랑에 속아주는 사람이지, 그리고 함부로 인생에 져주는 사람이지, 라고 웃음을 머금게 되었는데.
하지만 그것이 즐거움인가. 이 경지는 대체 뭔가.
누구도 울지 않을 때 우는 힘(p115)
술에 취해 누군가에게 써주었다는 인사말. 어쩔 수 없이 눈물이 또르르. 생각해 보니 누구나 울 때 울지 않는 힘보다는 누구도 울지 않을 때
우는 힘이 세겠다. 우는 게 뭐 부끄럽겠나. 울지 않고 한 세상 건너가는 사람들 참 딱할 뿐. 그들은 눈물조차 아까워서 꽁꽁 싸매는 인류이니
울지 않는 사람은 모름지기 피하고 볼 일이다.
길 끊긴 객지에서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일은 따스했습니다. 그냥 이곳에 폭 갇혀서 봄이 오든 그대가 오든 이별이 오든 종말이 오든,
무엇이든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저녁이 왔고, 저는 객지의 여인숙에서 사나흘 수취인불명의 소포 같은 잠을
잤습니다.(p288)
옆에는 시골 버스터미널 사진이 곁들여 있다. 매점, 이라고 크게 씌어진 간판의 불빛과 어떤 이들의 뒷모습이 공연히 짠해 보인다. 무엇이든
올 때까지 기다리다니. 수취인불명의 소포 같은 잠이라니. 나도 이제 뭐라도 기다려볼까. 봄도 그대도 이별도 종말도 오지 않으면 저녁이라도 온다지
않나. 그러면 나도 소포 같은 잠을 잘 수 있을까.
아아, 이토록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에세이라니! 허접한 리뷰 따위 쓰지 말고 그냥 한 번 더 읽는 게 남는 장사겠다. 읽다가 다시
울고, 다시 웃고, 그러면서 "아픈 것은 더 아프게, 슬픈 것은 더 슬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