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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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은 하찮은 일에 자기 능력을 사용하는 것에 이내 불만을 느끼게 마련이다. 게다가 벽을 통과하는 행위가 그 자체로 하나의 목적이 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모험의 출발이며, 후속과 발전, 요컨대 어떤 보람을 요구하는 행동이다. 뒤티유욀은 그 점을 아주 분명히 깨달았다. 그는 자기 안에서 확대의 욕구, 자기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고 자기 한계를 뛰어넘고 싶은 열망이 새록새록 더해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이 벽 뒤에서 자기를 부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어떤 동경이 마음 안에 자리잡았음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에게는 자기 능력을 통해 이룩하고자 하는 것이 없었다.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中
오늘 오후에 유명한 철학자 이브 미로노를 만나 그 사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 6월에 생존한 기간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에 대하여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은 누구나 수십억 년의 세월을 산다. 그러나 우리 의식의 한계 때문에 이 무한한 세월을 지극히 찰나적이고 단속적(斷屬的)으로밖에 경험할 수 없고, 그런 경험들이 모여 우리의 짧은 생애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는 훨씬 더 기묘한 이야기들을 했지만 나는 그의 말을 별로 이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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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벌을 받은 영혼처럼 고통을 겪고 있다. 이 고통의 끝에서 잘 팔릴 책이나 한 권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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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6일
생존 시간 카드를 폐지하는 법령이 공포되었다. 폐지된든 말든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다.
<생존 시간 카드> 中
그녀는 마치 자기 삶에 영향력을 적게 행사해야만 살아갈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가난과 겸손을 운명의 자비로 알고 사는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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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할 만한 속내 이야기가 없어서 그저 남이 얘기를 듣기만 해야 하는 신세만큼 처량한 것도 없다. 누구나 알다시피, 고전 비극에서 우리를 진짜 슬프게 하는 것은 주인공의 비밀 이야기를 들어주는 자의 비극이다. 평생 특별한 일이라곤 겪어본 적이 없는 순진한 사람들이 자기 모험을 자랑스러워하는 주인공의 장황한 이야기를 체념한 채 다소곳하게 듣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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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투안은 집 안에 들어서다가 속으로 깜짝 놀랐다. 벽지가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그 깜짝 놀랄 일에 아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불안해하며 아들의 표정을 살폈다. 아이는 충격을 감추기 위해 애써 미소를 지었다. 사실 아이는 자기가 옛날 벽지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중이었다. 비록 여기저기 벗겨지고 해지고 때가 묻고 무늬가 희미해지긴 했어도, 아이는 그 거무죽죽한 벽지에서 자기가 만들어낸 풍경이며 해질녘에 움직이는 사람과 짐승을 알아볼 수 있었다. 연한 초록색이라서 벌써 색이 바랜 것처럼 보이는 새 벽지에는 짙은 초록색의 반점들이 찍혀 있었다. 뜨내기 일꾼이 어설프게 도배해놓은 이 얇은 벽지는 왠지 병적인 느낌을 주었다.
<칠십 리 장화>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