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AI 기술의 발달과 함께 세상이 혁신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시장에 기발한 물건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팔며 부를 축적하던 과거, 우리가 알고 있는 자본주의의 정설이 깨지며 기존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앞으로는 더 이상 노동하지 않고도 돈을 버는 미래가 될 거라는 말들이 연일 오르내리는 요즘,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
기술이 인간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거라 전망하며, 발전의 가속화로 인해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 온난화 현상이나 기후 재난과 같은 위기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의 해결책이 제시되고 있다. 평범한 우리들은 ‘감히’ 생각지도 못하고 있지만, 초부유층 일명 슈퍼리치라 불리는 이들은 인류에게 얹어진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 자신들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 말한다.
기술이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의견, 기후 위기에서 벗어나 화성과 같은 다른 우주에서 거주할 수 있다는 SF 영화 같은 발상은 물론, 아직도 가난에 허덕이며 자국민들을 제대로 보호하고 먹여살리지 못하는 빈곤국, 개발도상국에 대해서도 재단이나 기부 등 온정의 손길을 뻗치며 국가보다 부자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서도 무료로 스타링크를 지원하겠다고 나선 일론 머스크, 혹은 세계적인 기업체를 운영하는 슈퍼리치들이 척척 국가적인 재난이나 위기에 자선사업을 펼치는 걸 보면 맞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이 내리는 선택, 움직이는 행동에 오직 자신들만을 위한 것이라 말하는 의견이 있다. 사회학자인 달리아 나미앙은 《슈퍼리치가 세상을 구한다는 헛소리, 그런데 우리는 왜 그들을 숭배하는가》를 통해서 초부유층의 모순을 꼬집으며 그들은 해결사가 아니라 문제 그 자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우리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부를 축적한 슈퍼리치. 일반적으로 ‘백만장자’가 부자라 한다면, 스페이스 X, 테슬라, 솔라시티의 대표인 일론 머스크의 자산규모는 무려 약 2,000조로 우리나라 정부의 1년 예산의 세 배에 달한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수많은 슈퍼리치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부를 누린다. 민간 우주여행을 떠나거나, 팬데믹의 여파로 모두가 봉쇄하고 있을 때에도 자신만의 개인 섬에서 안전한 휴가를 누리는 것. 이렇게 막대한 부를 가진 이들을 볼 때면 ‘다시 태어나도 내가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하는 아득함과 동시에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막연한 희망, 그리고 열심히 살면 그런 삶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열망에 사로잡힌다.
성공한 이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도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식으로든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기후 위기에 대해서도 기술은 이를 가능하게 한다며 긍정의 메시지를 제시하고, 새로운 ‘화성 식민지’ 개발은 도시의 비싼 집값에 치이는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가져다준다. 수많은 자선 사업 역시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인류애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런 행동에는 기만이 담겨있다. 그들이 가진 막대한 자본을 벌어들이기 위해 그동안 지구의 생태계를 거덜 냈고, 또 수많은 빈국과 개발도상국의 노동을 착취했으면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기술을 내민 적 없이 책임을 회피하듯 그럴싸한 약속만 내민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시대를 ‘도발 사회’라는 이름으로 규정한다. 엄청난 부와 특권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슈퍼리치들의 행위는 단순히 개인의 성공을 자랑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회의 불평등을 정상적이거나 혹은 닮고 싶은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의 야망과 자선을 무조건 긍정하거나 신뢰하지 말고, 그 과정에서 비용을 누가 부담하며, 또 어떤 이가 이 위험을 떠안게 되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시선을 일깨운다.
책에 제시된 여러 사례들은 도발 사회 속 슈퍼리치들이 남긴 모순적인 결과물들을 낱낱이 꼬집는다. 그들의 부가 사회적, 제도적 특권 위에서 축적된 것이며, 이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구원자가 아니라 노동 착취와 환경 파괴 등 오늘날의 위기를 만들어내고 심화하는 원인이기도 하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그들의 삶을 동경하고 숭배하는 우리들 역시 이런 도발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따끔한 지적은 슈퍼리치의 부와 특권에 대해 맹목적으로 추앙하는 현대의 우리들에게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 것인가 스스로의 태도를 되돌아보고 문제의식을 갖도록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다.
저자가 책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사례들은 각기 다르지만 모두 한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바로 이런 현실을 당연시 여기지 않아야 한다는 것. 슈퍼리치의 노골적인 과시, 그리고 이를 부러워하면서도 추앙하는 대중들의 공모야말로 불평등을 자연스럽고 정당한 질서로 고착화한다는 것, 그리하여 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부자에 대한 열등감으로 치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불평등을 인지하는 것이 무엇을 바꾸게 하는 힘이 있을까,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달리 무얼 어떻게 할 수 있겠어?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책은 이런 비정상적인 사회의 현상에 이름을 붙이고 문제화하는 것 자체가 거대한 저항의 시작이라 말한다. 원인도 모른 채 그저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불평등을 인내하지 말고,“부당한 현실에 분노할 줄 아는 감각을 되찾자"라고 단언한다. 특권의 부당함을 보고도 분노할 줄 모르는 사회는 결국 그 특권에 굴복하게 된다는 말이 마음에 숙제처럼 남았다.
그동안 별다른 생각 없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불평등이자 모순이었다는 사실, 우리가 가진 문제를 해결해 줄 구원자라 믿었던 슈퍼리치가 지구에 가하는 해악을 알고 나니 혼란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를 우리 모두가 제대로 인지하고 분노할 수 있을 때, 그들이 쉽사리 지구의 자원을 탕진할 수 없을 것이며 그들의 오만과 책임 회피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책임감이 생긴다.
부와 특권을 성공의 상징으로 전시하는 초부유층의 삶을 이제는 동경의 시선이 아닌, 비판적인 눈으로 그 권력이 만들어 낸 결과에 의문을 제기할 줄 아는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 부당한 현실 앞에 침묵하거나 숙명처럼 받아들이지 말고, 건강한 분노를 회복하자는 책의 시선이 불평등과 착취를 바꿔나가는 출발점이 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