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광복절이 지나갔다.
광복절이면 TV에서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으로 인해 먼 타국으로 떠나
평생을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사연이 소개된다.
고향에서의 삶과 추억이 남아있는 1세대를 넘어
이제는 많은 시간이 지나다 보니
그들의 후손들은 우리에게 외국인같이 느껴진다.
현지에서 만난 사람과 결혼하며 낳은 혼혈,
부모에게 배운 한국말로 몇 개의 단어를
더듬더듬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름도 외모도 전혀 한국인처럼 느껴지지 않고
이들 스스로도 자신을 한국인이라 생각할까,
우리나라를 고국으로 생각할까
그런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다.
약간 형태는 다르지만 여전히 그곳에서도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고,
부모님 혹은 조부모 세대의 이야기를 하며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전하는 이들도,
어떤 이는 원망 섞인 마음을 드러내는 모습은
낯설지만 마음 한편에 묵직한 무게감으로
흐릿한 잔상처럼 남았다.
이제는 전 세계 어디든 쉽게 오갈 수 있는데
무엇이 문제일까 싶지만
해방을 맞고도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또 가족을 잃기도 한 이들의 사연을
미처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다시 빛을 찾았다는 의미를 가진 광복절.
평온한 일상이 당연하고 익숙한 우리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아픔과 한으로 맺힌
마음이 남아있기에,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궁금한 마음에
이 책을 펼쳤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으로 사할린으로 떠나
평생을 어디에 속하지 못한 채 떠돈
사할린 1세대의 이야기를 다룬
이금이 작가의 장편소설 《슬픔의 틈새》는
그의 전작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포함해
일제강점기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의 마지막으로,
지배 국가가 여러 번 바뀌며 ‘나’라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이들의 고충에 대해 담아냈다.
책은 아직 해방 전인 1943년,
고향인 다래울을 떠나 사할린(화태)에
강제징용된 아버지 곁으로 가는
단옥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일본이 조선에 시행한
국가 총동원법의 일환인 줄도 모른 채
그저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돈을 벌기 위해
먼 타국의 탄광으로 떠난 아버지.
사람대우도, 제대로 품삯도 주지 않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환경 속에서도
가족을 위해 희생을 묵묵히 감당한다.
그러던 어느 날, 탄광촌의 노동자들에게
가족들을 현지로 데려올 수 있는 길이 열리며
단옥네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화태로 먼 길을 떠나게 된다.
금방 돌아올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고향 집에 가족 몇은 남기도 했는데,
그것이 평생의 이별이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열흘이 넘게 걸려 화태에 이르지만,
가족이 함께한다는 행복도 잠시
조선인, 일본인, 소련인이 뒤섞여 살아가는
그곳에서의 삶은 만만치 않았다.
고국에서 일본인들에게 받던 핍박은
지배체제가 바뀜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렸고,
그 사이에서 화태의 1세대 사람들은
조선인도, 일본인도, 소련인도 아닌
어디에 속하지 않은 ‘외부인’이 되었다.
고향으로 돌아갈 때 문제가 생길까 봐
손해를 보고 제약을 받으면서도
기어코 현지의 국적을 선택하지 않은 채
무국적자로 살아온 한인들이었는데
해방이 되며 이제는 돌아갈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고국이거늘
책임소재를 일본이나 타국에 돌리며
이들을 외면해버린 것이다.
돌아갈 길이 끊긴 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할린 1세대들은 그저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매일을 이어갔고, 그렇게 역사 속에 사라졌다.
화태에서 이들의 삶, 서로의 관계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함으로 뒤엉켜 있었다.
나라를 빼앗은 일본이지만
화태에서 만난 일본인은 시간을 넘어
서로에 대한 유대감을 형성하며
가족과 같은 사이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는 러시아 현지인과 사랑에 빠지기도,
그래도 다른 나라보다는 같은 민족이니까
고국에 돌아갈 때 낫지 않을까 싶어
북한의 국적을 선택한 이들도 생겼다.
한 가족 내에서도, 하다못해 부부 사이
혹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다른 국적이 뒤섞이게 된 것이다.
그저 그들은 거스를 수 없는 역사 앞에서
매일 먹여 살려야 하는 가족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했을 뿐,
가족과의 이별과 퍽퍽한 현실 앞에서
슬픔에 마냥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그 슬픔의 틈새에서도
인간다움과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간
단옥과 가족들, 사할린 1세대의 인생을 곱씹으니
사실상 ‘외국인’과 다를 바 없다 여기며
그들이 고국을 이제는 그리워하지 않고
그곳에 정착하고 싶을 거라 쉽게 생각했던
지난날이 반성되기도 했다.
척박한 땅에서도 기어코 채소를 심고,
밭을 일구며 고국의 음식을 해 먹은 사람들.
나라가 자신들을 저버렸음에도
끝까지 국적을, 나라를 버리지 않고
희망을 붙들고 있던 이들의 고통과 실망을
과연 내가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까 싶다.
해방이 되었지만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현지에 정착한 사람들이 있었다,
라는 한 문장으로 그들의 삶을 요약할 수 있을까.
그곳에서 살아온 시간이 길어서
그곳이 더 편하고 익숙하지 않을까,
그래서 더 좋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하고
쉽게 생각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외면 속에서
갈 수 없는 조국과 남아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묻어두고,
그곳에서 만난 이웃과 새로운 가족이 되어
연대하고 살아간 그들의 삶을
이제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들의 애달픈 삶은 1세대에만 그치지 않고
세대를 넘어 다음 세대로 이어지며
조국으로부터 받은 배신과 비관을 안고
기약되지 않은 미래로 삶이 이어졌다.
일본, 소련, 조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평생을 살면서도
그 틈새 속 행복의 조각을 찾아낸
그들의 긍정적인 모습이 존경스럽고
또 아름답게 빛나는 듯하다.
사회가 구분 지어 놓은 체제와 경계 속에서
그저 살아내고자 한 그들의 분투,
흔들리지만 인간다움을 잃지 않은 삶을
이제라도 헤아리고 미안해하며
또 책임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누군가는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그곳으로 떠나가게 된 개개인의 일로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삶은 그저 그네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연루되어 있는 하나의 역사로,
나와 우리와 사회와 나라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한 사람의 생애가 아니라
시대를 설명하는 역사 그 자체였던
단옥의 삶이 참 고맙고 귀하다.
나처럼 사할린 1세대의 삶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던 사람들 역시
책을 통해 그들의 삶에 귀 기울이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저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끝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그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기를,
이 슬픈 민족사에 대해 책임을 외면한
국가의 역할과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