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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치의 책방
  • 그루잠
  • 박보미(덕자전성시대)
  • 16,200원 (10%↓900)
  • 2026-07-22
  • : 2,010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그루잠. 깨었다가 다시 든 잠을 말한다.

이따금 선잠에 들었다가 깨었을 때면

몽롱해서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아

혼란스러운 감정을 마주할 때가 있다.


처음 보는 듯한 꿈속의 어떤 장면이

현실의 어떤 것을 떠올리게 하며

기시감이 들기도 하고,

때로 현실 속 처음 보는 낯선 이에게서

아는 사람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면

기억을 잃은 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에 빠지기도 한다.


유튜브 〈덕자전성시대〉를 운영하는

유튜버 덕자가 본명인 박보미라는 이름으로

펼쳐낸 첫 소설인 《그루잠》은

책 제목처럼 현실과 환상의 경계 속

'윤설'이라는 한 인물의 인생을 따라

모진 세상 속에서도 인간의 선함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치열한 기록을 녹여냈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기에

평상시 밝고 명랑한 모습의 덕자의

어떤 부분을 녹여냈을까 궁금했는데,


조금은 어두울 수 있는 삶 속에서도

그럼에도 희망과 선의를 잃지 않고

용서에 가닿는 주인공 윤설 자체가

덕자를 연상시키는 느낌이었다.


소설은 자신을 낳다가 세상을 떠나

누구에게도 축복받고 환영받지 못한 채

인생을 시작하게 된 설이의 탄생으로 시작한다.

한창 축복받고 사랑받아야 할 탄생 앞에서도

'나 때문에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는 현실은

그녀의 의도는 아니지만 죄책감을 갖게 만든다.


아빠와 단둘이 살아가는 삭막한 일상,

크게 모나게 자라지는 않았지만

주변인들과의 사이에서 이만큼 떨어져

'외계인'처럼 보이는 설이는

우연히 블랙홀처럼 빠져들게 만드는

비슷한 친구를 만나 행복해지나 싶던 찰나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한 공기업에서

상사에게 당한 지속적인 괴롭힘과 성추행 등

일련의 사건에 휘몰리며 조금씩 조금씩

금이 간 인생을 가지게만 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을 감싸줄 거라 믿었던

아빠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그녀를 집 밖으로 이끌었고,

직장을 나와 아르바이트를 하던 PC방에서 만난

든든하고 다정한 남자친구는

그녀가 그간 모은 돈 앞에 배신을 한다.


상처받은 마음과 빚만 남은 그녀에게

그럼에도 계속해서 인생은

이따금 따스함을 선사하기도 하며

그녀를 계속해서 살아가게 만드는데,


중간중간 자다 깨는 그루잠 속 펼쳐지는

아득한 꿈속의 세상은

마치 현실인 듯 아닌 듯 혼란스럽기만 하다.


책을 따라 윤설의 인생을 되짚다 보면

수많은 일련의 비극적인 사건에도

그녀가 자신을 그런 상황으로 내몬

상대방을 절대 탓하지 않는 사람임을 알게 된다.


그로 인해 몸과 마음에 상처를 받고,

누군가를 믿거나 행복하다고 느낄 때마다

이를 두렵게 받아들이면서도

그는 상처받은 마음을 복수로 대갚음하지 않고

침묵을 택하고, 그저 자신이 떠나는 것으로

하나씩 사건을 덮고 넘어간다.


물러터지고 유약한 사람,

착하다 못해 미련해 보일 수도 있지만

윤설이 가진 '순수함'은 나약함에 그치지 않고

모진 세상이 자신을 밀어내도

다시금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 삶으로 발걸음을 더하는

적극적이고 강한 사람임을 느끼게 했다.


우리는 세상에, 타인에 상처를 받을 때마다

쉽사리 와르르 무너지기도 하고

그 마음을 대갚음하고자 어떤 형태로든

'악인'이 되길 망설이지 않는데,

설은 상대를 미워하는 데 애써 시간과

마음을 쏟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인생을 더 단단하게 일군 것이다.


그렇게 아이에서 소녀로,

소녀에서 어른으로 자라,

나이가 든 장년층이 되기까지

설이의 인생은 계속 흐른다.


그녀의 인생을 통해 '선의'의 의미를

되짚는 걸까 싶은 찰나에

그루잠 사이사이 꿈처럼 느껴졌던

환상 속의 세계가 반전처럼 등장하며

그간 쌓아 올린 서사를 흔들고,

믿고 있던 진실을 와르르 무너뜨린다.


그런 혼란스러운 결말은

잠에서 잠시 깨었다가 다시 잠에 들었을 때,

혹은 짧은 잠을 끝내고 깨어났을 때의

멍한 기분처럼 유쾌하지 않은 찜찜함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그 현실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는 세계에서도

선의의 마음으로 타인에게 받은 상처를

체념하고 그를 구원하며,

용서에 이르는 그녀의 매 순간의 선택은

상처 너머로 느껴지는 희미한 온기,

따스한 기대를 남게 했다.


설이가 겪은 삶에서의 상처들은

우리 역시 살아가면서 마주할 법한 일들이다.

누군가는 그런 위기 앞에 포기하기도,

혹은 상대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스스로의 남은 인생을 괴롭게도 하는데


체념하고 무기력하게 도망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

인간답게 선의와 용서를 택한 설의 선택이

우리에게 선의의 진정한 의미를,

그리고 인간다움에 대한 생각을

재정의하게 하는 시간을 선사하였다.


유튜버의 책이라는 사실 때문에

사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차곡차곡 쌓아온 윤설의 서사가

그녀의 인생이 끝나고 난 뒤 한번,

에필로그와 부록을 통해 다시 한번 뒤집히며

예상치 못한 반전을 만들어줘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마지막 장에 그려진 D.C. Da capo D.C. 다카포,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라'는 악보 기호처럼

다시 첫 장으로 이끄는 흡입력 덕분에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마냥 밝고 희망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메마르고 건조한 현실 풍경 속에서

깊고 다정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작가의 진심이 와닿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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