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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遊一豫
  • 그늘진 말들에 꽃이 핀다
  • 박신규
  • 7,200원 (10%400)
  • 2017-10-30
  • : 525

너는 봄이다

네가 와서 꽃은 피고
네가 와서 꽃들이 피는지 몰랐다
너는 꽃이다
네가 당겨버린 순간 핏줄에 박히는 탄피들
개나리 터진다 라일락 뿌려진다
몸속 거리마다 총알꽃들
관통한 뒤늦게 벌어지는 통증
아프기 전부터 이미 너는 피어났다

불현듯 꽃은 지겠다 했다
죽을 만큼 아팠다는 것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
찔레 향에 찔린 바람이 첨예하다
봄은 아주 가겠다 했다
죽도록이라는 다짐은 끝끝내
미수에 그치겠다는 자백
거친 가시를 뽑아내듯 돌이키면
네가 아름다워서 더없이 내가 아름다운 순간들이었다
때늦은 동백 울려퍼진 자리
때 이른 오동꽃 깨진다 처형처럼
모가지째 내버려진 그늘
젖어드는 조종(弔鐘) 소리

네가 와서 봄은 오고
네가 와서 봄이 온 줄 모르고
네가 가서 이 봄이 왔다
이 봄에 와서야 꽃들이 지는 것 본다
저리 저리로 물끄러미
너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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