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오래 계속됐으면, 하는 만화
셰헤라자데 2003/12/12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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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귀야행>은 상당히 일본적이다. 사촌간의 결혼이 가능한, 우리나라로서는 왠지 꺼림칙한 풍습이 있는 것도 그렇고 엄청나게 많은 절마다 풍경을 걸어놓곤 하는 그네들 나라를 떠올려 볼 때 이미 성황당이나 장승 따위가 사라져버린 우리 나라보다 오히려 더 미개한 야만국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네들이 아닌가 싶다. 이상하게도 지리적으로도 더없이 가깝고, 한 나라가 다른 한 나라를 몇십 년간 통치하에 둔 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한국의 죽음에 대한 가치는 이상할 정도로 상극인 듯 하다. 시체와 사체의 개념도 그렇고, 보통 죽은 이들의 한을 풀어주고 저승으로 떠나보내는 우리와 달리 그들은 각종 요괴와 설녀, 도깨비, 이런 것들에 훨씬 집착한다. 이질감과 거부감이 들기 십상인 그들의 문화에 대해 내가 조금 의외의 마음으로, 가볍고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이 <백귀야행>이다. 좀 특별한 만화이다.
대대로 영적인 능력이 뛰어난 리쓰네 집안의 죽은 할아버지 이이지마 가규(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다)를 위시하여, 그의 딸과 아들들의 삶이 얼핏얼핏 비치고, 심지어는 행방불명된 리쓰의 삼촌이 몇 십년만에 '저쪽 세계'에서 돌아오기도 한다. 할아버지가 부렸던 용 모양의 요괴 아오아라시(두번째로 좋아하는 캐릭터)는 가규와 맺은 계약 때문에 리쓰를 충실하게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지킨다.
이런 류의 만화들-<세상이 가르쳐준 비밀>이나 <펫샵 오브 호러스>가 으레 그렇듯, 또 요즘의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허무는 영화나 이야기들이 늘 그렇듯, 그들의 사정을 귀기울여 들어주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줌으로써 영문을 알 수 없던 괴사건들은 하나씩 차곡차곡 스러져 간다. 그리고 다른 것들보다 유독 <백귀야행>이 돋보이는 것은 섬뜩한 느낌이나 오싹한 공포감 하나 없이도 요괴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 그러면서도 경계에 대한 은근한 눈짓을 계속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시간이 겹쳐지며 일어나는 사건들, 구구절절한 스토리가 쓱 생략되어 있는 이야기 방식(작가는 정신없이 마감에 맞추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곤 하지만)은 어딘가 모르게 시적이고 여유롭다. 그래서 <백귀야행>을 읽을 때는 이야기 한 편마다 두 세번씩 읽고서야 넘어가게 된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보다, <백귀야행>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향과 촉감 때문에, 더욱 오래 이 만화가 계속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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